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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진화하는 컬렉터

김영애

지난 해 중국현대미술 컬렉터(Collector)로 유명한 울리 시그(Uli Sigg)가 아트광주를 찾은 데 이어, 올해에는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소유주이기도 한 프랑소아 피노(Francois-Henri Pineault) 컬렉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러한 ‘슈퍼 컬렉터’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수용할 미술관을 지어 스스로 관장 자리에 앉았으며, 큰 갤러리를 차리거나, 세계적인 경매회사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확실히 작가나 큐레이터가 주목받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컬렉터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소비자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지 않고, 제품개발과 유통과정에까지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로 거듭나는 ‘프로슈머(prosumer)’ 현상은 사실상 산업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술계에서 컬렉터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컬렉터의 성장이 희소식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미술인에게나 컬렉터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장식용 작가(잘 팔리는 작가)’와 ‘개념적인 경향의 작가(안 팔리는 작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같은 미술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쪽 진영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배타적인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컬렉터들 또한 한걸음 뒤로 물러서 있다. 감상과 더불어 재산증식의 방편도 될 수 있다는 말에 뛰어들었는데 작품은 질리고, 그나마 재판매할 길도 막연하니 분통만 난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해외 작가의 작품만 사겠다, 반대로 국내에서의 통용이 비교적 순조로운 국내시장용 작가들만 사겠다, 혹은 아예 다시는 미술작품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작품 투자에 성공하려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사야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조언은 우선 공부부터 해보자는 의지마저도 꺾어놓는다.


미술인과 컬렉터 사이의 이와 같은 애증관계는 컬렉터의 태생적 요건, 즉 그들이 미술의 외부인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미술계에 종사하면서도 자기 돈으로 그림 한 장 사보지 않은 (혹은 못한) 전문가들에 비하면 생돈을 투자한 컬렉터의 입장이 더욱 진지할 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이익여부에 따라 언제든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존재이다. 반면 미술인들에게 이 곳은 단순한 생업의 터전이 아니라, 돈 대신 자신의 인생을 걸은 영원한 배틀 그라운드이자 홈그라운드일 수 밖에 없다. 미술인이 컬렉터의 후원을 기대하면서도,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때는, 컬렉터는 후원만 하고 중요한 결정권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점잖은 미덕이었던 때도 있었고,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가격이 오를테니 화상을 믿고 구입하라며 ‘묻지마 투자’를 권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 시대는 변화했고 컬렉터들은 진화했다.


노튼 바이러스 창시자이자, 뉴욕현대미술관의 이사이기도 한 피터 노튼(Peter Norton)은 지인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해마다 다른 작가에게 재미있고 인터랙티브한 작품 제작을 의뢰한다. 1988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피터 노튼 가족의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제는 일반인들도 MoMA스토어를 통해 약 200-300$ 가격으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2004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도호의 작품, 투명유리그릇은 현재 청주비엔날레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한편, 시카고 스마트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리차드 본(Richard Born)과 미술비평가, 큐레이터이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교수였던 데니스 애드리안(Dennis Adrian)은 은퇴 후 그들의 집을 전시장으로 변모시켰다. 약 40평 규모의 소박한 집은 특별한 개조없이 그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심지어 문짝에까지 그림을 걸 정도로 공간 곳곳을 활용하여 그동안 모은 250여 점의 컬렉션을 큐레이팅 컨셉에 맞게 번갈아가며 소개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들의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컬렉터와 동반성장이 필요

이러한 컬렉터들은 자신의 재정규모와 특성에 알맞게, 미술작품과 함께, 의미 있게 살아가는 보기 좋은 ‘프로슈머 컬렉터’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되 작품제작의 영역은 작가의 성역으로 남겨둘 줄 알고, 구입한 작품을 컬렉터의 삶과 연결시켜 전시장에서 작품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시장을 쫓지 않았지만 오히려 독창적인 후원방식 덕분에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기도 했다. 따라서, 프로슈머 컬렉터는 막강한 자본으로 강력한 영향력만을 발휘하려는 슈퍼 컬렉터와는 차별되어야 한다. 물론 앞서 소개한 노튼이나 은퇴한 큐레이터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들의 컬렉션에 대한 태도를 주목하자는 것이며, 작은 규모의 컬렉션을 하는 개인이라 하여도 주변인에 머물며 기회만 엿볼 것이 아니라, 소속감을 갖고 함께 만들어가는 컬렉터가 되기를 주문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본업은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항시 ‘우리 미술인’이라는 표현에 주저함이 없이 다양한 방면에서 미술을 후원하는 컬렉터, 몇 십 년 후를 내다보고 미술인과의 상호발전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컬렉터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컬렉터를 메시아처럼 추종하거나, 그들의 역기능을 두려워하여 배척하기 보다는 이들이 적절한 프로슈머 역할을 하면서 동반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십년 동안의 미술시장이 양적인 팽창에 집중하였다면, 앞으로의 십년이 질적인 성장에 바쳐져야 하는 이유이다.



김영애(1974- ) 프랑스 파리 에꼴 뒤 루브르 박사. 월간미술 파리 통신원 역임. 현 오페라갤러리 서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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