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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011 미술계를 돌아보다

박영택

올 한해 나는 이 대한민국에 지쳤다. 퇴행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초현실적이라 허구와 환영을 무기로 싸우는 예술조차 이곳에서는 결코 게임이 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전시장에서 본 작업들은 그저 지리멸렬하다. 미술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무능하다. 반면 현실 자체는 너무 세고 정치는 하이코미디수준이다. 아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그것이 일상이 되고 모두는 무감각해졌다. MB정권이 보여주는 정치현실의 무지막지함과 비루함이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을 한없이 남루하게 한다. 거대언론과 여당정치인들과 권력집단의 그 막말과 이해할 수 없는 두뇌에 지친 한 해였다. 국가란, 정치와 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 모양 이 꼬라지로 사는 걸까? 나꼼수와 개그콘서트가 그마나 위안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닥치고 정치!


그와 아울러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실용적이고 경제적 가치의 창출과 연관된 것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못내 두려운 한 해였다. 오로지 삶의 기준이 자본이자 경제적 이윤으로 국한되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자본의 원활한 순환과 증식이 그 어떤 가치보다 존중되는가 하면 그래프와 숫자로 나타나는 각종 경제지표에 의거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평가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미술인들 이러한 시스템 속에 결박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만 한다. 그 궤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현실세계란 곧 이러한 경제 시스템 자체이고 여기서 이탈하는 것은 모두 비현실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비실용적인 일을 도모하는 이들, 그러니까 예술을 하는 이들의 삶은 현실의 바깥에서 불안하게 떠돌게 된다. 빈곤에 내몰리거나 때로는 소외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 작가들의 예술작품과 작품 성향이 자본과 산업에 강하게 이끌리는 것도 그만큼 그것에 의탁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 교환되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사회풍토에서 예술행위의 입지는 마냥 좁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예술성이 아니라 ‘비지니스 마인드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만이 살아남는다. 예술은 이제 상당수 자본의 축적 수단이 되었고 상품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자체가 ‘예술ʼ이 되어버린 상태다. 자본주의로부터 탈주하고, 이를 극복하는 기획이 사회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실패한 오늘날 예술성과 예술생산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런 공백을 틈타 아무런 성찰도 없이 마구 난입하는 시장주의에 속수무책으로 예술계가 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예술계의 태도이다. 아울러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열심히 하는 일이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를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예술가들 대부분은 극심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스로를 잉여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쓸모없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힘드므로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혹은 주변사람들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운의 죽음을 보라! 그러나 일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스템 속의 안전한 삶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스템에서 이탈한 불안정한 삶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사람다운 자유가 발휘될 수 있는 진정한 현실로서 체험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삶의 체험이 무척 불안정하고 힘든 것이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사람다운 자유를 그들 작품에 새겨,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결박한 우리사회의 구성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오늘날 예술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맥락에 있다. 쓸모있음의 강박에 사로잡힌 우리사회의 구성원에게 ‘쓸모없는 것의 존재를 나타내는 일’이다. 작가들은 그것을 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나타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쓸모에서 제외된 것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우리사회의 편견을 깨고자 한다. 그들이 느끼기에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쓸모에 종속된 존재들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한국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쓸모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쓸모없음이 품고 있는 생기를 바깥에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쓸모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쓸모없음에 바쳐진 자신들의 생애를 통해 역설적으로 쓸모에 얽매인 오늘날 우리 삶의 빈곤한 실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 미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쓸모있음으로의 강박적 몰입이 아니라 쓸모없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일 것이다.



박영택(1963- ) 성균관대 석사. 마니프 미술평론상(1995) 수상. 아트포스트 기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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