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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자본의 소통, 사진시장 시즌 2

강철

작년 5월, 제3회 서울포토페어(2011.4.23-26, 코엑스)가 끝난 후 정산을 마치자 또 적자가 났다. 지난 3년간 한·중·일 사진 전문 화랑이 한자리에 모이고, 야스마사 모리무라, 왕칭송, 배병우 등 국가대표 사진예술가가 왕림했으며, 스웨덴, 스페인, 동유럽 사진을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등 번듯한 족적을 남겼지만, 코엑스 재무 감사팀과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다. 매년 3-4억을 투자하는 코엑스의 ‘삼세판 적자 행사 소멸 원칙’에 따라 매년 5만 명 마니아들이 연중행사로 즐겨왔던 사진잔치가 곧 사라질 위기였다.

큐레이터의 3대 조건이란 무엇인가
학창시절 박물관학 수업에서 배운 큐레이터의 3대 조건(유럽 기준)이란 미술사 박사 학위, 5개 국어, 펀딩 능력이었다. 막연히 전시 기획자를 꿈꾸던 나는 이른 나이에 큰 좌절을 맛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조건의 기획자를 한국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비록 시대의 사기극이었지만, 신정아의 활동이 빛났던 이유는 박사 학위(가짜라고 판명), 언어 능력(유럽과 달리 한국은 영어만 잘하면 되는 듯하다)보다, 경위야 어찌되었던지 펀딩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박물관학 교수님도 학기 내내 강조한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지식과 언어 능력의 소유자는 유럽에도 많이 있으나 자금 능력까지 뛰어난 큐레이터는 드물다고 하였다. 오바마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제 막 미국 대선에서 떨어진 앨 고어가 자신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기 위해 뉴욕의 투자자를 만나러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한 대목이 나온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뻔 했던 이가 몸소 영업을 뛰러 다닌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도 이렇게 돈에 대해 솔직하게 소통하는데, 한국의 미술은 과연 돈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게 대하고 있을까. 예술가는 물론이거니와 미술관, 화랑, 미술잡지, 기획자 등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것처럼 숭고한 것이 없는데, 가장 큰 밑천은 돈이 아닐까. 돈을 사랑하고 탐욕을 부리자는 것이 아니라 좀더 솔직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상업’ 화랑, ‘상업’ 작가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난센스다. 재벌의 자식이 아닌 이상 누구나 모두 생존을 물건을 만들고 판다. 그런데 아직도 작가가 직접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중적 태도는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제작자는 감독의 입장과 다르다
흥행에 실패한 예술영화, 소위 ‘저주 받은 걸작’의 후일담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감독과 배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지 모르지만, 제작자는 파산과 이혼의 고비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예산을 요긴하게 사용하는 예술감독(공익형 페스티벌, 비엔날레)이 아닌, 유통업자(수익형 아트페어, 블록버스터전)의 운명으로 살아온 나는 늘 숫자로 평가받는 정글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철없는 감독보다 불안한 제작자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한다. 어쨌든 아트페어 기획자는 수익과 품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이 아닌 척 하지만 대부분 가난을 걱정하는 이유는 체면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에 형식적인 미술 행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달갑진 않지만 세상이 모두 돈을 논하고 중요성도 커지니 ‘정신의 소통’보다 ‘자본의 소통’에 조금 더 치중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하고 근사한 일회성 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생계에 꾸준한 보탬이 되는 똑똑한 미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폼도 중요하고 멋도 중요하고 필(Feel)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닌가.


사진시장과 미술시장, 어쩌면 아울렛과 백화점
나 역시 지난 3년간 이러한 껍데기의 정점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포토페어인 ‘파리포토’를 흉내내기 바빴고, 모양새가 우선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서구 미술을 베끼던 작가를 조롱하던 나 자신이 결국 그 꼴이 된 것이다. 어떻게든 부끄럽지 않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 수입 명품으로 포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한국 사진작가의 경제적 수익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자문해본다. 무엇보다 볼품이 좀 떨어지더라도 유일한 사진 전문 페어가 사라지지 않고, 어떻든 지속되어야 향후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통해서라도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4회 포토페어(2012.4.26-29, 코엑스)는 올해부터 ‘사진 연감’이란 콘셉트로 지속 될 것이다. 극소수가 아닌 대다수의 사진작가의 작품이 당당히 미술 컬렉션이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출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하루 만에 만든 방송도 몇 년에 걸쳐 재방, 삼방 등 끝없이 반복되는데, 몇 년을 준비한 사진 개인전은 불과 몇 주 만에 증발해버린다. 지난 1년간의 사진 개인전이 한자리에 모이는 포토 페어는 매년 한권의 연감으로 정리되어, 행사가 끝나도 국내외 미술행사와 사진행사 속에서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의 보수적 미술 시장에서 사진은 복제 미술이라는 태생적 누명은 당장 벗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백화점 대신 아울렛 나름의 장점과 역할이 있듯이, 조만간 선진국처럼 사진이 중요한 미술 컬렉션의 한 부분이 되리라 확신한다. 10년에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뀌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강철(1972- )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김달진미술연구소 편집연구원, 월간디자인 수석기자 역임. 현 서울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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