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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친절한 미술관, 좋은 미술관

조은정

인터넷에 뜬 “미술관에서 금지였던 사진촬영이 허용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관객들과 좀 더 쉽게 소통하겠다는 취지다.”라는 문구에 눈길이 멈추었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이른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작품을 경험하케 하기 위하여 매 학기마다 미술관에서의 현장강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어 소풍처럼 나선 미술관 전시실에 이르면 학생들은 들뜨기 마련이고, 눈에 드는 작품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지나 이미지로 소유하고 싶어 한다. 저작권법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곧 사후 70년이라는 규약이 적용되겠지만, 현재는 사후 50년이 된 작가의 작품은 저작권 사용에 위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미술관이 많지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의 손은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스위치에 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에서는 대개 촬영이 금지되어 있음을 주지시키고 그래도 섭섭하면 휴게공간이나 전시실이 아닌 곳에서 촬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술관 내부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는 저지에 의해 이내 수업의 성격은 ‘친절한 안내’에서 ‘정보 부족’의 나락으로 향했다. “미술관 내부 및 전시장 내에서의 촬영은 전시작품 보호 및 쾌적한 관람환경을 위해 기본적으로 허가하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발밑으로 내려앉은 위신을 의식하며 멋쩍은 웃음을 날릴 수밖에.

그랬던 미술관에서 단 이틀뿐이지만 전시작품의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전공자거나 특정 작품에 관심이 많은 이들일 터이니 이들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그야말로 처음으로 맞는 친절함에 미술관과 친한 관객들은 즐거움을 누릴 일, 헌데 수많은 책들이 사다리를 타고 있는 아카이브전이 열리는 공간에 이르자 “사진 찍으면 안 되시는 거 몰라요?”라며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것마저 면박을 준다. 특정한 이미지가 부각되지 않는 아카이브 전시에 저작권법은 어떻게 적용될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오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친절한 미술관’으로 기대
어쨌거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미술관 부속기관으로서 한국근현대미술 연구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기증받은 자료들을 디지털화한다고 하니, 이제 마이크로필름을 돌리다가 현기증과 오심으로 괴로워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현재 디지털화를 진행하는 자료들은 그림 한 점 없이 깨알같이 작은 활자가 촘촘히 박혔을 뿐만 아니라 베개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두께의 근, 현대미술사 책을 만들어낸 최열의 자료이고, 가끔씩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북한으로 간 미술가들과 일본에서 찾아낸 많은 내용들이 즐비할 김복기의 자료라 하니 결과물이 연구자들에게 제공될 시점을 손꼽아 기다려도 좋을 일이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와 교육이라는 국립미술관의 역할에 충실해왔는데 ‘연구’에도 역할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있다. 예를 들어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은 미술관이 과연 얼마만큼의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미술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여 발표한 ‘한국미술 7대과제(서울아트가이드 1월호)’는 국가적 지원과 법적 제도, 미술시장의 투명화와 양도소득세 해결, 미술 아카이브의 개선과 해외홍보, 미술관의 기능 전문화, 미술컬렉터의 다각화, 미술비평의 문화적 역량강화, 중고교 미술교육 강화와 미술교육개혁 등이었다. 미술관의 전문화라는 항목에는 아마도 현저히 모자라는 국공립미술관에 근무하는 학예직의 수, 비정규직으로서의 불안정한 신분이라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연구하고 전문적인 영역에 있는 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은 그들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여느 지자체의 미술관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사정이 나은 것은 사실이다. 현대적인 유리가 번쩍이는 멋진 외관에 걸맞게 쿨하게도 학예연구직이 3인에 불과한 곳도 있으니까.

이제 동물원 옆 미술관이라 지칭되던 국립현대미술관은 ‘친절한 미술관’으로 관객에게 다가오고, 학자들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연구를 하러 가는 풍경이 구성될 것이다. 친절한 미술관의 외양이 교육과 전시와 연구와 작품의 보존과 문화적 발전의 토양을 제공하는 역할을 모두 이루어내는 정말 좋은 미술관의 첫 모습이기를 바란다. 친절하고 좋은 미술관의 구현을 위해서는 일하는 이들이 전문적 지식의 보유와 능력에 의거해 보호받아야 할 것이며, 그들은 댓가로서 좋은 전시와 작품수집, 연구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 조은정(1962- )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 구상조각회 조각평론상 수상. 모란미술관 자문위원, 한국미술정책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 한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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