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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각예술의 양적 팽창과 질적 위축

이태호

공공조각의 활성화 

한국 조각계는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왔다. 한 대학입시 전문잡지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한해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졸업하는 인원이 6백여 명이 된다. 이는 조각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전국에 2천5백명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조각을 전공한 인원의 숫자와, 여러 가지 형태로 조각의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을 포함해 봤을 때, 오늘날 조각인구를 1만명에 가까운 숫자로 헤아리는 일도 무리가 아니다. 


조각이라는 미술의 한 장르가 일반인의 인식에 폭넓게 확산된 것은 아무래도 공공미술이라는 개념과 함께 도시에 설치된 ‘공공 조각(public sculpture)’과, 지자체들에 조성된 ‘조각공원’부터일 것이다. 도시의 ‘공공 조각’은 ‘건축물 미술장식품’이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건축주에 대한 권장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바뀌면서 도심에서 흔히 눈에 띠게 됐다. 지난 90년 이후 관공서의 신축이 늘어나면서 으레 그 입구에 조각품이 세워졌고, 건설붐 속에서 지어진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에도 조각이 들어서고 있다. 한편 ‘조각공원’이란 이름으로 아예 조각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공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술관이나 화랑이라는 특정 공간에 머물러 있던 그 동안의 미술이 일반사람들의 생활공간에로 다가가는, 결과적으로 공공조각은 대중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러한 조각품 설치 현상과 관련하여 그 작품의 질, 장소와 지역주민과의 관계, 설치 후 관리, ‘건축물 미술 장식제도’의 정당성과 효율성 등 운용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제기와 비판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그런 논란에 대해 직접적인 의견 제시는 피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러한 현상이 미술문화와 조소예술의 창작적 측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조각품이 도심이나 공원에서 자주 눈에 띠게 되는 것을 두고 혹자는 조각예술의 ‘붐’이라는 표현을 쓰며, 조각이 공공미술을 독점한다고 비판한다. 그것이 ‘붐’이든 ‘현상’이든, 조각은 회화 등 기타 장르에 비해 그럴만한 특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선호되는 것이다. 첫째는 브론즈, 돌, 철 등 조각의 재료가 거의 영구적으로 야외에서의 기후 조건을 견딘다는 점이다. 그러한 영구성과 단단함을 가진 재료를 다른 장르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둘째는 그 재료가 현대 도시의 건축에서 사용하는 것들이어서 그만큼 주변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셋째는 사진과 글자를 이용한 대형 광고판(평면적, 2차원적)이 즐비한 도심에서 공공조각은 건물과 같이, 공간과 함께 숨을 쉬며, 3차원적 입체물로 선다. 따라서 그것은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감상이 가능하고, 항상 움직이고 있는 주민에게 보는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순신 동상=광화문’의 경우처럼 어느 특정 공간이나 건축물의 상징물이 되고, 기념비성이 증대되며, 그 지점을 나타내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와 같은 조각품이 설치됨으로써 직선과 사각의 회색 시멘트벽에 둘러싸인 채 생활하는 주민들에게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는 상상력과 사고를 자극하며, 생생한 예술적 체험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예술의 위축과 혼란 

이 같은 현상은 일단 미술문화의 대중화와 보편화, 민주화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한편 조각계에 활성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것은 조각가들로 하여금 재료와 크기, 공간에의 적응 등에 있어 새롭게 체험할 기회가 돼왔다. 또한 공공조각의 설비 비용은 천만원 단위가 넘는 게 보통이어서, 무엇보다도 조각가의 생활을 금전적으로 윤택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즉 많은 조각가들이 공공 조형물에 관심과 노력을 ‘올인’함으로써, 정작 조각분야에 있어 진지한 미학적 실험이나 새로운 지평의 열림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역량 있는 작가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자신의 작업실을 ‘공공조형물 모형 제작실’로 전환시켜버린 것이다. 


그 결과 공공조각, 혹은 옥외조각은 여기저기에 비슷한 모습으로 세워지며 활성화 되고 있는데 반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만나는 (옥내)조각은 70~80년대의 조각으로부터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70년대나 80년대에 볼 수 있었던 조각의 실험정신이나 지평의 새로운 열림은 없는 채 , 그저 허우대만 크고 기술과 재료에 집착한 대중적인 조각들이 도심의 거리나 야외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90년대 이후의 조각계를 바라보면, 나로서는 천성명의 서사구조와 김범의 개념성이 언뜻 생각날 뿐, 이렇다할 만한 신선한 기운을 만난 기억이 없다. 물론 설치미술의 확산에 따른 입체와 공간 개념의 변화 등 미술계 제반 상황의 변화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조각예술의 양상이 현재와 같이 계속된다면 공공조각은 조소예술 자체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발목을 잡고 상업적 타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공공조각의 활성화가 조각예술의 본질적이자 미학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에 대해 조각계 전체는 깊은 반성과 그 해법을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Advancing in Quantity and Stagnancy in Quality of Sculpture


Since the 1980s, many public sculptures have been installed in Korea. Most of these have been installed in front of new buildings and even parks, the most conspicuous being Sculpture Park. Most sculptors have become very busy due to the fact that they have been in demand from many people, most notably being the customs.


I see a problem in this because most of these sculptors continue with their art purely for lucrative purposes. As a result, It is hard to see the new spirit of sculpture and art. The recent boom in public sculptures has reinforced the deterioration and commercialization of art in lieu of advancing art. I believe this is a serious problem, and that all sculptors need to seriously consider this matter at this time.


- Lee, TaeHo



이태호(1951- ) 홍익대 조소과 석사.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감독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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