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가난과 병마 속에서 고독한 창작을 이어가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사망을 계기로, 예술인 복지법의 필요성이 수면에 올라와 한 때 문화 예술계 여론이 들끓었지만, 관련법은 아직도 국회통과가 요원하다.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그 이유가 예술인의 기준이 모호하고 학습지 교사나 택배기사 등, 다른 분야의 근로자와 형평성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인이 그들보다 더 훌륭해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학습지 교사나 택배기사도 예술인들만큼 삶의 조건이 열악하다면, 정치인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들 앞에 공통적으로 놓인 삶의 한계 상황 아닌가. 열심히 작업, 또는 일을 하고도 지속가능한 삶을 꾸릴 수 없을 때, 그 어떤 직업이든 간에 사회적 관심과 해법이 필요한 것이다. 잠수함의 토끼처럼,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예술의 한계 상황을 폭로하고 스러져간 최고은이 활약하던 영화 분야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는, 이미 예술의 영역에도 속하지만 그래도 미술보다는 대중적인 문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역 작가의 비참한 죽음은 그보다 더 입지가 좁은 미술의 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작가에 대한 지원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계에 등장한 대형 유통업체가 영화의 종 다양성을 더 축소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파이가 커지면 윗목에도 따스한 기운이 돌아야 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다.
대형 영화관은 오늘도 팝콘냄새 찌들은 한 가지 취향을 은연중에 강요한다. 우리에게는 ‘한류’라고 불리 우는 경쟁력 있는 문화가 있다. 그 자체로도 대견하지만, 아직은 다양성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는 한 가지 색깔로 물들어 있다. ‘국제적인’ 안무와 작사 작곡에, 똑같은 화장 빨, 성형 빨로 무장된 세계적 상품으로서 한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여 각광 받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분명 엄청나게 노력했을지 모르는 그 살아있는 인형들에 애국주의까지 포장된 모습은 더욱 민망하다. 그것은 정해진 포맷을 최대한 가속시킴으로서 생겨난 경쟁력일 뿐이다. 국제 경쟁력을 가지는 예술이 클래식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규칙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정해진 규칙을 완벽하게 따라가는 것에 강한 우리의 경쟁 풍토와도 무관하지 않다. 스포츠 분야의 강세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예술도 이제는 규칙 자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생존의 시대를 넘어서 가히 문화의 시대가 개막 된지도 꽤 되었지만,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예술은 여전히 공공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맨땅에 헤딩하고 열심히 파 보지만, 결국은 자기 하나 누울 무덤만 파는 꼴이다. 미술계 현장에서 만난 작가들은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과연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1994), 웹진『미술과 담론』편집위원(1996-2006),『미술평단』편집장(2003-05)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이론부문)(2009)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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