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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미술판을 사로잡은 서늘한 미인들

반이정

미술판을 사로잡은 서늘한 미인들

_신예 작가 급부상을 읽는 한 페이지짜리 소견서



지난 4-5년 사이 화단이 체험한 세대교체의 속도감은 전광석화 같다. 수년 전만해도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테제는 그저 화단을 고요하게 평정한 중견-원로작가에 밀린 젊은 무명작가에게 이따금 주어지는 기약할 수 없는 반(反)시장적 순번처럼 느껴졌다. 반면 오늘 영 아티스트의 존재감과 이들을 주목하는 일련의 시도는 비평과 시장성 모두의 검증을 이미 통과한 유망주를 공개 시연하는 쇼 케이스처럼 인식된다. 과장되게 요약하면 모든 전시장과 모든 작가입주 프로그램과 모든 지면이 오로지 청년작가를 위해 배당되고 할애된다. 올 초 삼성미술관은 전회대비 곱절의 전도유망한 젊은 피에 주목했고, 미술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아라리오의 지원프로그램 또한 20-30대 대안작가를 골라 몸값 높은 상품으로 육성 중이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작가 15인중 3인은 고작 20대였다. 어디 그뿐인가? 불과 90년대 미술잡지의 표지를 독차지했던 원로작가는 자취를 감추고 그 위로 떠오르는 영 아티스트의 동향과 전망이 특집으로 연이어 채워졌다. 이팔청춘에 대한 화단 전체의 유례없는 찬가는 이들의 어떤 매력에 사로잡혀서일까? 


영아티스트의 성향분석

급부상한 영 아티스트의 성향 분석은 그간 적지 않게 기술되고 논구 된 바, 필자들이 내놓은 입장‘들’이 수렴되는 지점은 대충 이러했다. 평면 부분 초강세, 고전적 장르 구분의 불가, 주제로서 일상 천착, 대중문화 아이콘 수용. 거기에 경량화 된 재료 선호 등이다. 요즘 뜨는 작가들은 열거한 속성 중 어느 하나에 올인 하기보다 속성들의 중첩 안에서 자신의 미학적 입지를 강화시킨다. 예를 들자. 약관 20대 초에 대안작가로 발견된 함진과 그의 초미니 인형은 일단 경량화 된 입체작품이며, 장르적 구분은 여의치 않다. 전시장에 보일 듯 말 듯 차고앉은 그의 꼬마 인형은 조각일까 설치일까? 혹은 작품을 촬영해서 대형 인화한 경우까지 감안할 때 그는 사진가일까? 



동양화 분야의 반체제적 실험은 개중 으뜸이다. 영정 기법으로 헐리우드 캐릭터를 주체로 내세운 손동현은 동서양의 장르적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대중문화에 노출된 동시대 작가의 삶과 변화된 관객의 안목을 반영하면서 21세기의 동양화가 직면한 존재론을 고민한다. 한편 캔버스 뒤로 은폐한 작가 자신의 얼굴도 미디어 시대의 작가에겐 쓸만한 재료다. 셀프 이미지를 번번이 써먹은 조습, 송상희 같은 대안작가군은 그나마 조심스런 축에 속한다. 이들을 뒤로 하고, 한젬마 낸시랭 처럼 인기절정의 대중 예술가는 신체가 곧 프로모션이다. 이들의 작가적 존재감은 전문 미술지보다 패션지와 매스 미디어가 주목하고 홍보한다. 또 곧잘 거론되는 회화 부흥에 대해서도 집고 넘어가자. 초대형 캔버스와 극사실주의 회화를 필두로 평면 부흥은 구매대상으로의 예술품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위적 실험보다 평면이 팔리기 쉽단 논리다. 따라서 이 현상을 전근대적 매체인 회화의 극적인 부활로 풀이하기 보다는, 반동적인 현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 아티스트 현상의 속 깊은 배경으로 사회 전체의 이념적 보수성이 지목될 만하다. 군사정권 붕괴 직후, 오랜 정적을 상실한 사회 구성원은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 우경화에 이르렀고, 구상-추상, 순수-참여, 아카데미즘-전위라는 한때 꽤나 통용되었던 화단의 이분법들도 유의미성을 상실했다. 이 같은 정치 공백과 긴장감 상실 속에 청년작가의 촉수는 시선을 사로잡는 기교 좋은 일러스트 회화로 치우칠 소지가 클 것이다. 간혹 도시 생태나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 주목하고 이를 조형언어로 다듬은 실험이 존재했지만 이들의 결과물은 미술관 안에서 정치적 효과를 오히려 반감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 청년작가하면 늘 따라붙는 일상성은 조형 언어로 매개되는 손쉬운 단서로서, 독백체 같은 엇비슷한 그림들의 양산을 촉진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성찰을 염두 한 것 같진 않았다. 마치 현대 중국회화에서 마오 주석이 그저 소재주의의 재물로 호출되는 것처럼. 


청년작가의 높은 수요는 전시장 문턱을 넘어, 서점가로 확산 중이다. 한 방송 아나운서가 집필한 젊은 작가 21명의 이야기는 청년작가로 평정된 화단의 근황을 독자에게 실어 나른다. 책 제목 『서늘한 미인』마냥, 오늘 관객이 만나는 영 아티스트는 낯선 조형언어로 화단에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으면서도, 선배의 오랜 집권을 따돌려 시장을 서늘하게 독식하는 젊은 미술인이다. 



반이정(1970- ) 서울대 미술이론 석사. 아트인컬쳐 평론공모(2002) 당선.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송은문화재단 미술상 심사위원 역임. 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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