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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예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며

김백균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 할머니가 인생 역전을 맞았다는 신문 보도가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그녀가 단 돈 5달러에 구입한 그림이 잭슨 폴록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만일 진품인 경우 5달러에 구입한 그림은 1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최근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 그림이 잭슨 폴록의 진품인지 아닌지, 혹은 그 그림이 얼마나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될 것인지 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와 제도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가 더욱 흥미롭다. 


작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문제는 배제한 채, 단지 잭슨 폴록의 작품이므로 작품의 가격이 1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 어떻게 이런 단순 논리가 가능할까? 한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예술세계 성숙의 시기에 따라, 또는 세계에 대한 인식의 깊이에 따라, 소재와 제재,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심리적 변화, 몸의 상태, 환경에 의해 작품의 질은 사뭇 달라진다. 사실 작가의 의도와 그 표현의 효과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는 매우 희소하다. 단지 누구의 작품이라는 그 한 가지 사실이 그 작품의 질적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그 작품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묻지 마” 거래가 성립하는 것은 아마 작금의 미술시장밖에 없을 것이다. 앞의 예처럼, 유명인의 작품이라는 것이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 버리면, 이것은 신화의 세계에 속하는 믿음이지 합리적인 이성에 기초한 의사소통의 구조가 아니다. 결국 작품의 우수성은 상관없고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 아닌가? 상업자본주의가 만든 명품의 세계와 비슷하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 다른 허구의 세계이다. 


예술의 본질은 돈이 아니다 

지난 세기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도 다원주의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판단의 가치기준을 잃어버렸다. 예술작품 또한 어떠한 하나의 기준을 들어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모방이나 재현, 표현, 개념, 숙련도 같은 기준들이 하나 둘 무너져 가거나, 복합기준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는 모든 것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한 가지 기준을 제시할 수 없게 되면서 이제 예술은 ‘제도’라는 주장이 나타난다. 특히 사회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바라보고 규정하는 기준이 너무 다양해서 예술의 본질을 찾을 수 없으므로, 예술이란 단지 필요에 따라 놀이의 규정을 바꿔가는 게임이며, 놀이의 규정 즉 사회제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최상위의 가치이자, 제도인 자본은 예술을 자본의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적 부가가치 수단으로 만들었다. 이제 예술도 자본의 논리를 따라 움직이고, 자본을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그들에 의해 정의된다. 근래 들어 미술시장에서 원로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자본은 이미 높은 가격이 형성된 대가의 작품보다 적은 투자로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눈을 돌린다. 그전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이 특별히 풍부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업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가가 필요 

예술은 언제나 젊어지기를 원한다.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새로움은 감동의 새로움을 포함하는 것이지 형식적 새로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대 동양의 예술론은 감동의 새로움, 형식의 완숙을 지향한다. 젊은 작가의 실험성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지만, 실험과 전위만이 예술적 가치의 전부가 아니다. 문제는 오늘날 자본이 주도하는 미술의 사회제도가 예술본질에 대한 탐색의 길을 막아놓았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예술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래서 사람을 진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감동에 의한 힘과 보이지 않는 맥락적인 기준 같은 예술적 효과에 의한 것이지, 모방이나 재현, 표현 같은 형식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게임에도 법칙이 있다. 형식은 다를지라도 각각의 형식 법칙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예술적 효과에 대한 검증의 틀이 제시되어야 한다. 예술은 단지 임의적 ‘제도’라고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에 자본의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 오늘날 예술은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진정한 예술가는 없고, 예술가라 불리는 직업인만 있는 것은 아닐까?



김백균(1968- ) 중국 베이징대 철학과 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역임. 현 중앙대 한국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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