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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거대한 환금성 미술의 궁핍

강수미

미술이 산업과 자본의 눈칫밥을 먹으며, 언론과 대중의 관심 밖에서 궁핍하고 외로워하던 때가 있었다. 한국 사회, 신문과 방송에서,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 보이> 같은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한 해 현대자동차 수 천대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떠들어대던 몇 년 전은 특히 그랬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종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투자 금융기관, 지자체 등등이 미술에 뜨거운 구애를 보낸다. 신문과 잡지는 그간 문화면에 옹색하게 전시 단신이나 전하던 수준에서, 세계 미술과 한국현대미술의 판세를 논하는 특집 기획기사를 내는 데 이르렀고, 방송은 비단 문화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경제 코너에서까지 미술작품을 다룬다. 대기업은 스타 아티스트로 상품 프로모션하기 바쁘고, 갤러리와 은행은 미술로 ‘펀드 상품’ 만들기에 바쁘고, 공공자치단체는 블록버스터 해외 유명전시 유치하느라 바쁘다. 덩달아 우리들은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 구경하느라, 평일에는 미술품 경매장에서 응찰하느라 바빠졌다. 


왜, 어떻게 이렇게 사회의 미술에 대한 애정지수가 급격히 높아졌을까? 갑자기 사람들 내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던 미술에 대한 욕구와 미의식이 분출하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무척 좋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감지되는 미술에 대한 이상(異狀) 열기의 진앙은 ‘돈’이다. 이를테면 미술에 대한 사회 제 영역의 관심과 애정공세의 시작점은, 미술가와 작품이 연예산업처럼 ‘돈 되는 것’으로 상품 메커니즘을 따르면서, 미술시장이 미국 서부개척시대 금광처럼 ‘캐기만 하면 돈 나오는 곳’으로 재발견되면서부터인 것이다. 2007년 KIAF는 2백억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한겨레21』(제 659호)에 따르면 경매회사는 올해 작품 경매 총매출액을 1000억 원대까지 기대하고 있고, 예컨대 ‘서울 명품아트 사모1호펀드’나 ‘스타아트펀드’가 나올 정도로 미술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지도 좀 되었단다. 


자본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갤러리 오너, 경매회사 사장, 미술 금융투자 상품 애널리스트들은 의아해 하겠지만, 비평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현대미술의 지금은 무척 궁핍해 보인다. 사회가 미술에 무관심했던 그 때보다 더욱. 미술계가 투기 자본의 새로운 유입 처로서만 각광받기 때문이고, 작품이 상품으로만 평가되기 때문이다. 가치와 지향으로서의 ‘미술’의 씨가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가의 뒤통수로부터는 연예인 기질이 뿜어져 나오고, 작품 표면을 타고 흐르는 것은 상품 물신의 향락이다. 그리고 미술계 공간과 감상자의 지각과 인식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미술이 되다 만 ‘이무기 미술’ 혹은 ‘환금성 미술’이 뿜어내는 후덥지근한 환상이다. 돈이 돌고, 그런 만큼 작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데, 미술 자체는 후진 환상으로 메말라가는 이 역설! 


“미술=돈”이 아니다 

미술의 정의와 기능은 역사 사회적 조건에 따라 변하고, 주체의 관심에 영향 받는다. 혹자는 미술을 ‘아름다움’으로 가치 판단했고, 혹자는 미술에 ‘치유’라는 기능을 부여했으며, 또 혹자는 미술이 ‘표현’이나 ‘의사소통의 매체’라 했다. 그런데 요즘의 대세는 ‘미술=돈’ 이다. 사실 미술은 앞서 열거한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고, 그런 한에서 고도 세계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돈’이라는 등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매우 많거나 크다.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미술이 아니듯, 아스피린의 진통효과가 미술의 치유와 결코 같지 않듯, 상품의 경제 효과와 미술의 가치가 등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의 문화정책에서부터 아직 개인전을 열지도 않은 신생작가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미술이 ‘돈의 사다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 사다리가 당장은 달콤한 과실(돈)을 손에 쥐게 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다리’란 오르고 내리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가 아니다. 돈이 미술의 최종 목적이 되면, 사다리로서의 미술은 언젠가 치워질 것이다. 사회로부터,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다. 한때 사회의 온갖 관심이 그리로 쏠렸던 한국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 보라. 그 좋던 영화와 그 좋던 평가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한국 영화는 지금처럼 침체되어 버렸을까? 그 위기의 시작이 바로 한국 영화에 거대 자본이 몰려들고, 영화의 가치평가를 자동차 수출지수로 동일시하거나 환산하던 ‘좋았던 그 때’라는 사실은 미술계에 무거운 역사적 지표가 된다. 지금 미술계를 유령처럼 떠도는 ‘환금 물신’을 단속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짜 궁핍한 미술의 상태를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오래, 더 심하게 겪어야 할 것이다.



강수미(1969- ) 홍익대 미학 박사. 전시기획 부문 올해의 예술상(2005), 석남젊은이론가상(2007) 수상. 현 덕성여대 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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