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 ‘미술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인범

다른 일로 제아무리 시끄러워도 요즈음 문화 예술계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진 현상은 예술의 정치화 문제일 것 같다. 참여정부에 들어 특히 공적인 영역의 헤게모니는 정권에 밀착된 몇몇 ‘예술’인들에 의해 거의 장악 되다시피 했다. 예술위원회, 정부 차원의 각종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에서 확인되는 현상은 예술계가 정치판과 거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미술시장 과열현상일 것이다. 한동안 위작시비로 진흙 바닥을 기고 미술대전 비리로 어지럽더니, 올해 들어서 미술계는 온갖 욕망을 부추기는 투전판이 되었다. 관심 없던 이들도 치솟는 그림 값, 특정 작가 작품 매절 이야기, 작전세력의 출현, ‘묻지마’식 작품 구매, 갤러리나 옥션 같은 미술 이야기를 일삼는다. 그 사용가치에는 아예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미술은 부동산 같이 자본 시장에서 투자 우선 대상으로 떠올랐다. 여러 측면에서 이제 미술은 삶의 세계와 하나로 포개진 것 같다. 덕분에 신문, 잡지, TV, 인터넷 등 각종 매체들의 문화면들에 넘쳐나는 미술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었고, 어느덧 느낌이나 감각의 쾌 불쾌를 떠나 권력이나 돈을 탐하는 자리에서도 미술은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었다. 현실 속에 힘차게 작동하는 미술!


그런데 주위를 에워싸는 수많은 미술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 그 숱한 이슈들은 정작 ‘문화’, ‘미술’, ‘예술’의 이름으로 언급될 만한 것들인가? 미술인들이나 미술 담당기자들이 전하는 가치는 도대체 어떠한 것들인가? 등등. 의구심도 가시지 않는다. 알고 보면 십중팔구는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거기서 예술은 한갓 구실일뿐 미술현장이나 온갖 정책적 접근들은 온통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 사회, 경제적 이익을 향해 있다. 다만 예술도 예술에 관한 관심도 단지 장식 요소일 뿐이다. 공허하기 짝이 없다.


미술계에서 전문성과 윤리성, 그 내막

여기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온 세상을 들끓게 하고 있는 최근의 ‘신정아 박사학위 위조사건’ 소란도 예외는 아니다. 큐레이터, 국립미술관의 자문위원이나 대학교수 자리를 거치고 이렇다 할 상을 수상하며, 광주비엔날레 감독에 이르렀던 한 젊은 ‘미술인’의 예일대 박사학위 진위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보도나 논평들은 마치 사회 구성원 전체가 써 가는 집단 창작 같다. 우리 사회의 온갖 병리적 현상들이 적절하게 소재로 배치된다. 대중적 관심을 모을 만한 이 ‘진실 게임’은 그 내러티브구조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그래서 납량 시리즈물의 대체재같이도 느껴진다.


그런데 제 아무리 경악할 만한, 혹은 흥미진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에 대한 미술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이었을까? ‘진실게임’으로 보고자 하는 한 이 사건은 예술적인 것은 아닐진대. 그렇다면 차라리 게임의 고수들인 경찰이나 검찰 혹은 사회부담당 기자들에게 일찌감치 맡기면 그뿐인 파렴치한 사기사건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른바 미술전문가들이 개입할 틈이 거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계’의 논의가 이렇다 할 생산성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자기 한계를 드러내고, 기껏해야 푸념 이상이 되지 못 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미술계’ 종사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들의 존재의 정당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이 사건을 모른 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의제로서 설정하지 않으면 안될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것을 의제로 삼으려면 타당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결코 신정아라는 한 개인의 진실성을 따지려 들 때 그 조건은 성립하지 않으니 말이다. 괴롭고 쑥스런 일이지만 그 틈은 우리의 활시위를 그 동안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숙성시켜 온 ‘미술계’ 스스로를 향해 당기고자 할 때만 아슬아슬하게 열리게 될것이다.


너무 단순하긴 하지만, 이 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술계’가 그녀에게 부여한 숱한 역할과 기능은 어떠한 것인가? 이 임무들을 수행하는 데에 요청되는 최소한의 전문성과 윤리성은 어떠한 것인가? 신정아 씨는 과연 그러한 능력을 구비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탁월한 실력’을 인준해 온 미술계의 ‘당신들은 정작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미술계’ 구성원으로서의 능력이란 어떠한 것인가? ‘미술계’가 이름값을 할 능력집단이라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학위나 작품의 진위 같은 검증작업이나 그림 값, 헤게모니 놀음 같은 ‘신명나는’ 이야기들에서 떠나 ‘미술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결국에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이 가치 있는 예술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인범(1955- ) 홍익대 미학 박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 역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