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74)위태위태한 미술비평 | 김성호의 미술계 팩션(1)

김성호

최근 이작가의 눈에는 최평론가가 부쩍 불쌍해 보인다. 그가 미술평론가로 데뷔한지도 어느덧 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젊은 날 그토록 숭상했던 비평 정신을 이제는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삼으면서 하루하루를 미술현장을 영업하듯이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난 ‘글쓰기 자산’을 힘겹게 게워내며 먹고 살려는 그의 몸부림이 이작가로서는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최평론가가 그동안 제도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염이 최평론가의 착하디 착한 심성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이작가는 최근에야 알았다. 예를 들어 최평론가는, 원고료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지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나쁜 잡지사의 손짓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최근 M평론가가 모 잡지 대표와 밀린 원고료 문제로 소송을 불사하며 대판 싸움을 벌이고 절연까지 했다는 소식과는 격세지감이다. 매체를 차버린 평론가가 할 수 있는 비평 활동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매체를 만드는 일? 아서라! 이런 차원에서 지불해야 할 원고료를 떼먹는 다른 모 잡지에 절필 선언까지 했던 S평론가가 얼마 안 가 다시 ‘공짜 비평 안기기’ 대열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평론계를 흉흉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잡지사의 ‘열악한 사정’을 알고 힘이 닿는 한 지속적으로 도와주려는 최평론가는 분명코 천사이다. 게다가 최평론가는 가난한 젊은 작가들에게 카탈로그 서문비를 깎아 주는 것으로 소문이 난 자애로운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제, 그는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당신처럼 착한 비평가가 미술비평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말을 이작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맞다. ‘위태로운 미술비평’이란, 전시리뷰에 주례사를 헌정하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비평이나, 카탈로그 서문에 작가의 작품에 관한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이 공부한 이론들로 글의 대부분을 채우는 불성실한 비평, 또는 논지는 퇴색하고 재기발랄한 글쓰기 형식만이 전면에 나서는 인상주의적 비평 등 일련의 ‘나쁜 비평들’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다. 진지하고 성실한 글쓰기라도 ‘일관된 비평적 건강성’을 십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평을위태롭게 한다.


미술평론가, 오늘의 얼굴

더욱이 미술제도나 기관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 묻는 제도비평, 혹은 ‘컨텍스트적 비평’에 힘써야 할 평론가가 정작 그것에 대해 침묵하고(그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그저 전시리뷰, 작품론, 작가론과 같은 갖은 청탁에 의한 ‘텍스트적 비평’에만 골몰한다면, 그것은 비평이 감당해야 할 온전한 역할을 방기하는 일이다. 오늘날 대개 ‘자발적 비평’은 간데없고 청탁에 의한 ‘비자발적 비평’들만 넘실댄다. 대개의 청탁은 날 선 비평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며, 비평의 언어를 온순하게 길들인다. 청탁자의 요구로부터 비평가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이 열악한) 잡지에 공짜비평을 안길 뿐 아니라 (가난한 작가들에게) 서문비를 할인해주거나 아예 작품으로 대신 받는 그의 착한 비평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의 비평계와 미술현장의 질서를 흐리고 위태롭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더욱이 이러한 착한 비평은 대개 주류, 제도의 상징폭력에 침묵함으로써, 문화권력의 상징적 가치를 공고히 구축하는데 충실한 조력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 최평론가는 이작가로부터 받은 비판에 가슴이 시려온다. 보드리야르의 미술에세이 「미술의 음모」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처음이다. ‘주동자가 없고 모두가 공범자이자 모두가 희생자가 되는 미술의 음모의 세계’에 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담해 왔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최평론가는 자신이 부지중에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들을 하나둘 떠올리고는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로서는 밥벌이로 전락한 이 비루한 현장비평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엄두를 내질 못한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의 방을 들여다보니 절로 나오는 긴 한숨... 그는 질질 끌어온 박사논문을 속히 마무리하고 모교에 교수로 임용되는 희망을 다시 품어본다. 그래! ‘건강한 비평’ 어쩌고저쩌고하는 고민따위는 그저 후배들에게 물려주자!


* 이 글은 한국미술현장을 언급하기 위한 ‘팩션(Faction)’이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상임.



- 김성호(1966- ) DEA파리1대학 미학예술학(미학 전공) 박사. 96미술세계 평론상(1997) 수상.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역임. 현 미술평론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