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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디지털 미디어시대의 고민

김형기

불의 발명보다 컴퓨터의 발명은 우리에게 갑작스럽고 새로운 생활 패턴을 제시하며 매일 빠른 진화를 강요하고 있다. 즐거운 일이긴 하나 늘 즐거울 수 없다면 분명 우리가 쉽사리 적응치 못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들로부터 단짝 또는 절친의 자리를 인수받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친지들과의 소통보다는 사이버 공간 어딘가 존재하는 좀 더 많은 존재자들과 커넥션되어 있길 바란다. 확실히 가능성에 더욱 가치를 느끼는 인간의 속성이 작용한 것이다.



80년대 말 프랑스 유학시절에 동전으로 국제전화 걸던 때를 상기하여 보면 물리적 공간의 괴리는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시간상의 괴리감을 함께 동반한다고 확신했었다. 무슨 말인지 아는 분도 있겠지만, 동전이 허락한 통화시간이 급하게 종료되면 귀 옆에까지 가까이 있던 사람은 블랙홀 같은 어둡고 먼 공간 저편으로 빨려 나가듯 갑작스레 단절되는 느낌에 의해 종종 그 거리감에 상심하곤 했었다. 지금은 ‘Out of Sight Out of mind’가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보는 것조차 조작되는 이유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통신되는 정보기술로 인해 멀리 있는 사람도 바로 곁에 있는 듯한 원격현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은 예술에 먼저 차용되어 우리의 바람을 시각화하곤 했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예술의 위대한 힘 중의 하나이며 기술이 예술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날로그 감성에 감동을 주는 작품 필요

동영상의 화질, 압축, 저장, 전송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시간을 조정하여 재생하기도 하고 거꾸로 되돌려 보기도 한다. 기억의 희미함과는 반대로 늘 생생한 이미지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핫 미디어(Hot media)로 살아난다. 초고속 카메라, 4K 프로젝터, 현미경, 과학사진 기계와 기술 등은 기존 매체 작가들이 하기 힘들었던 작업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을 발휘하는 새로운 시각의 작품 양상이다. 인간의 시각 확장은 인간의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에서 보여주는 멀티미디어의 경험이 정신 세계에 구체적인 상(Image)을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온몸으로 본다’라고 말하는 총체적인 지각현상 데이터를 입력받아야 더욱 실제감을 느낀다. 오감의 유기적인 감각현상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동기화 기술이 필요하다. 


아날로그는 거대한 적분된 디지털이다. 아날로그가 미분되어 디지털화되었을 때 제어하고 명령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록된다. 미시 상태의 시각 세계는 거시를 꿈꾸게 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이 Processing이나 MAX Msp Jitter 등의 저작툴을 사용하여 디지털 인터렉티브 미디어 작품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입문 작가들은 저작도구를 통해 현란한 기능의 습득 정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아날로그 감성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따스한 가슴으로 만드는 미디어 아트를 생산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 이전에 아날로그 매체 예술이 가졌던 역사와 감성을 피드백 하여 얻을 수 있다. 진정한 최고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아트는 그 기술은 보이지 않는 편안한 인터페이스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김형기(1960- ) 숭실대 미디어아트 공학박사. 인천 국제디지털 페스티벌, 부산항빛축제 총감독 역임. 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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