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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012결산 :‘내면의 부름’

박영택

5년 전 MB정권이 들어섰을 때 나는 확신했었다. 예측한 대로 끔찍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고 역사는 마냥 왜곡되었다. 정의나 진실은 망각되고 힘과 권력과 자본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야만적 삶이 출렁거렸다. 허구와 가상이 현실과 실재를 압도하는 형국이었다. 앞으로 그 5년을 또 견뎌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시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현실은 일종의 가상공간이다. 언어와 기호, 이미지 등 여러 상징체계가 그것을 이루고 있다. 기호학자 바르트는 이를 ‘신화’라고 불렀다. 그는 신화를 설명하기를 “현실을 뒤집어서 그 속에서 역사를 비워낸 후 그 속에 자연을 채워 넣은 것, 곧 현실을 비워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없는 신화들이 판을 치고 그것이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오늘날 미술인들은 그런 신화를 지우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올 한 해 대다수 미술인들은 여전히 기존 신화에 빠져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늘날 그러니 우리는 가능한 주체가 되어 그 실재, 현실을 신화 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미술계에 떠도는 신화, 현실 삶을 규정하는 온갖 상징체계들이 만들어낸 신화를 지우고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 이른바 문화적 작업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가능할까? 신자유주의와 맞물린 천박한 시장 중심주의가 판치고 미술작품은 조악한 인테리어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미술계의 올 한 해는 여전히 대규모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많은 옥션과 페어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한결같은 작품, 작가들이 범람했다. 하여간 먹고 살아야 하기에 작가들은 ‘스펙’을 쌓느라 분주했다. 작품의 질하고는 무관한 문제다. 교육수준이 높아진 만큼 뛰어난 예술가의 숫자는 비례하는가? 절대 아니다. 왜 그럴까? 미술을 직업으로 하고 미술을 팔아먹고 사는 이들, 미술 산업에 기생하는 인구들은 늘어났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과 자기 내면의 요청에 응해 창조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순연한 마음과 정신을 지닌 이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작가가 되기 위한 비즈니스
오늘날 작가가 되는 일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경력을 쌓고 시장이 선호할 만한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만들고 미술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공모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도록 힘쓰고 그렇게 점수를 쌓아 대학에 전임이 되거나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가 되는 순간 예술과 예술가는 명분에 머물고 만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미술 역시 성공과 전략, 사업과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지고 돌아갈 경우 이 미술계, 예술계는 얼마나 황폐하고 비루할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아티스트가 되는 삶, 문화 자체가 거의 발을 붙이기 힘든 각박한 자본주의로 치달아 가기에 그렇다. 이미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 사회, 학교가 요구하는 순종적인 인간형으로 길들여져 왔고 나아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욕망에 깊숙이 물들여졌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정보도 형편없고 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환경이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갈망과 허기, 의욕을 다지게 하는 한편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자기 갈 길을 묵묵히 가게 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작가란 가난할 수밖에 없고 세상과 그다지 친밀한 관계를 가질 필요도 없이 그저 혼자 가는 길이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것은 교육이나 주변의 권유보다는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득 계시 같은 그날이 도래하는 순간 그는 예술가가 되었고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간다. 예술가가 되려고 결심하는 순간 그는 지독한 심미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눈, 감각을 사로잡는 모든 것을 편애해야 한다. 책과 미술작품, 음악과 심미적인 모든 존재를 향한 미친 듯한 사랑을 지녀야 하고 마음속에 진정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그 열망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것이 평생의 삶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살아있는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되고자 한 이는 스스로 자신만의 멘토, 롤모델을 간직하며 미적인 것에 매료되고 진짜 좋은 것들을 알아보고 탐닉하면서 진짜 예술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열정을 가진 이들을 찾기는 너무 어렵다. 이 자본주의적 삶의 논리를 충실히 뒤따르고 내재화하는 이들이 다만 자신의 직업난에만 작가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 미술계의 불행이다. 예술은 모든 것을 투기하고 극한으로 밀고 나가 죽어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미술계는 다들 살겠다고, 잘 살겠다고 ‘신화’가 장악한 지점으로 몰려간다. 그러나 그 길은 종국에는 죽는 길일 것이다.



박영택(1963- ) 성균관대 석사. 마니프 미술평론상(1995) 수상. 아트포스트 기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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