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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유럽 미술시장 속 미술관과 미술관 속 미술시장

서진수

스위스의 아트바젤과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가 겹치는 해 6월이면 세계인이 유럽으로 엄청나게 몰려간다. 2015년 6월의 바젤에는 작년의 세월호 사건, 금년의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로 꽉 막혔던 마음을 뚫어보려는 듯 한국인들도 퍽 많았다. 필자는 먼저 프랑스 파리에 들러 ‘정창섭’전을 보았다. 페로탱갤러리에서 박서보에 이어 정창섭의 전시가 열려 한국인으로서 뿌듯했다. 1985년부터 2005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의 태그에 <Tak(닥)>과 <Meditation(묵고)>란 제목이 붙어있는 김용대 기획의 ‘Meditation’전은 “T-Tansaekhwa”를 쓰는 서구에서 우리가 표기하는 “Dansaekhwa”를 알리는 자존감 넘친 전시였다.


아트바젤, 가고시안갤러리 부스


바젤의 6월은 늘 힘이 넘쳤다.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Art Basel)에서는 미술관에서 많이 보던 수준의 10억 원 이상 작품이 오픈 1-2시간 안에 절판되는 VIP 오픈과 98,000명이 다녀간 일반 오픈이 1주일 동안 열려 3-4조 원어치가 팔렸다. 미국(55개), 독일(39개), 영국(27개), 프랑스(17개), 스위스(17개) 등 5대 강국을 포함한 33개국 284개 화랑이 7개 섹션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고급 미술시장은 철저히 VIP 우선이고, 금융기관 UBS, 시계회사 오데마피게, 비즈니스 전용제트기 회사 Netjets, 아트보험회사 AXA Art 등 파트너 기업의 VIP를 우대하고 보호하는 관리체제로 운영된다. 나를 포함한 비대상자는 입구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비즈니스를 46년 동안 해온 아트바젤에서는 큰 손 고객인 미술관과 박물관 우대정책도 주요 전략 중 하나이다. 스위스에 80개, 미국에 120개, 홍콩에 40개 미술관-박물관 대표가 VIP로 초대되고 그들의 정책과 전시계획을 발표하는 기회도 부여된다. 결국은 공동발전이고 미술시장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 상업적인 페어와 영리기업 및 비영리 기관의 환상적이고 입체적인 만남의 장이다. 추상과 미니멀이 세계 미술시장과 미술관의 트렌드인 가운데 한국과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단색화 작품이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블럼앤포갤러리, 페로탱갤러리 등에서 동시에 출품되고 성황리에 판매되어 단색화의 서구시장 진출에 청신호를 보여주었다. 바젤을 찾는 또 다른 매력은 그 기간에 맞춰 열리는 30여 개 미술관의 특별전이다. 특히 3-4개 대형전시는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와 경매회사에게는 부가적인 만족과 수집-경매 포트폴리오 자료를 보너스로 제공해주고, 작품을 구입하지 않은 여행객에게는 나름의 위로와 여행경비 보상의 기회를 주었다. 개인 간 거래로 3,000억 원에 팔린 <너 언제 결혼하니?>를 포함한 바이엘러미술관의 ‘고갱’전은 2월에 시작되어 8개 대·중·소 아트페어가 열린 6월까지 계속되었고, 특히 6월 한 달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일 없이 열려 총 37만 명이 다녀갔다. 그 비싼 작품의 사진촬영을 허락하고, 11시에 문을 여는 아트바젤 관계자들도 짬을 내서 관람할 수 있게 한 배려심과 작전은 감동 그 자체였고, 자본주의의 좋은 본보기였다.


베니스비엔날레, 벨기에 페어보트재단의 Proportio전


베니스에서는 비엔날레와 10여 건의 비엔날레 병행행사, 그리고 미술관으로 쓰이는 팔라쪼에서 열리는 특별전이 베니스를 물+미술의 도시로 탈바꿈해놓았다. 귀족문화를 엿볼 수 있는 베니스상인의 후손과 세계의 거부들이 남긴 팔라쪼에서 열린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전과 벨기에 페어보트(Vervoordt)재단의 ‘Proportio’전 등은 서양 건축과 입식 생활,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조화, 추상화와 미니멀의 미학과 수용성, 동양미학의 세계화 등에 관한 많은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Proportio’전에 걸린 윤형근, 정창섭, 하종현의 회화, 배병우의 사진, 지당 박부원의 달항아리는 베니스가 사랑하는 유럽의 주요 컬렉터인 페어보트의 컬렉션에 당당히 입성하여 한국의 미학을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유럽의 많은 미술관은 감상과 교육이라는 미술관 본연의 임무, 미술시장과 화상이 왜 필요한지를 묵언으로 설명해 주었다. 미술선진국은 사진촬영을 허락하고 자신과 주위 사람의 감상이 조용히 이루어지도록 교육하였으며, IT기술을 이용한 터치형 전자도록으로 어린 관람객까지 즐겁게 해주었다. 다양한 사람이 구입한 작품이 결국에는 미술관으로 유입되고, 미술관은 그 작품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확대재생산 구조를 만들고 있었다. 같은 자본주의의 다른 세상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으나 미술시장과 미술관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온 값진 여행의 여운은 한참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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