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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미술관, 아트페어, 경매에서 만난 컬렉터

서진수

꽃을 보면 대체로 꽃잎에 반하게 된다.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암술이다. 수술의 꽃가루가 날아와 암술머리에 붙어 수정되면 씨방에 씨앗이 생겨 꽃의 생명력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달라붙게 하는 데는 벌이나 나비뿐만 아니라 바람도 도움이 된다. 올봄에 꽃과 대화를 하며 새삼 꽃의 진실을 보았다.


꽃의 진실에 관한 사실을 보며 미술시장과 연결시켜 보았다. 미술시장의 암술에 해당하는 것이 작가이다. 영원히 남는 것이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에 해당하는 컬렉터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관심과 자본이 없으면 씨방이 맺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판매를 통해 자양분인 자본이 돌지 않으면 작가는 조그만 그림밖에 그릴 수 없고, 화랑과 경매의 화려함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보는 이를 끌어모아 시장을 키우는 화랑과 경매장은 꽃의 꽃잎과 같다. 화랑 기획초대전이나 KIAF 같은 대형 아트페어는 역시 아름답고 화려하다. 작가는 전시로써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암술, 수술, 잎이 모두 중요하다. 골똘히 생각해보면 미술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수술에 해당하는 컬렉터이다.



최근 오랫동안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가 미술관을 열어 뉴스가 되었다. 유니온약품 안병광 회장이 경복궁에서 가까운 부암동에 서울미술관을 건립하였다. 스스로 즐길 줄 알고, 화랑대표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며, 오래 남을 작품 위주로 컬렉션을 해온 컬렉터이다. 누가 샀는지 궁금했던 이중섭의 황소도 미술관 오픈 때 공개되었다. 이중섭 위작사건 때 이중섭을 살리고 미술시장의 신용을 올리는 방법은 이중섭의 걸작이 거래되는 길밖에 없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출세해서 남 주는 컬렉터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


KIAF, 가을 경매

가을이 되니 봄과 여름에 무성했던 꽃들이 지고 향기 강한 국화류가 피기 시작한다. 거대한 미술시장 행사인 한국국제아트페어인 KIAF가 열렸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하더니 그래도 예년 수준을 넘어 판매가 이루어졌다. 어려운 시장을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화랑들의 판매실적이 좋았다. 작년까지 숨죽이던 컬렉터들이 간혹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좋은 작품을 들고 나온 화랑과 오랜만에 산뜻한 작품을 발견한 컬렉터들이 오랜만에 구매 의사를 나누는 것을 보며 풀밭에서 아름다운 꽃무리를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가을 메이저 경매도 속속 열리고 있다. K옥션에서는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의 글씨와 겸재 정선의 그림이 들어있는 보물 서화첩『퇴우이선생진적(退尤二先生眞蹟)』이 고미술 최고가인 34억 원에 낙찰되었다. 고미술시장에서 도자기와 서화첩이 최고가 경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옥션에서는 이중섭과 데미안 허스트의 근현대 미술품, 신진작가 작품, 가구 등의 디자인 작품과 함께 람보르기니 등 스포츠카가 경매에 출품되었다. 마이아트, 아이옥션, 옥션 단 등 고미술 전문 경매회사들도 일제히 가을 경매를 실시하였다.



미술을 끔찍이 아끼고, 미술 감상을 생활화하며 미술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미술 애호가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여전히 걸작 사냥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즐기다보니 집안이 창고가 되어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결국 본인 스스로 화랑을 운영하게도 될 것이다. 꽃의 수술들에게 좋은 소식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한다. 그래야 암술에게도 좋고 예쁜 꽃잎을 계속 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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