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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예술, 시, 폭력 - 아네스 바르다

심은록

퐁피두센터 바로 옆의 나탈리오바댜갤러리(galerie Nathalie Obadia)에서 아네스 바르다(Agnès Varda, 영화감독, 시각예술가, 1928- )의 전시(2.8-4.5)가 열리고 있다. 퐁피두센터에서는 ‘쉬르레알리즘’ 전시가 열리고 있고, 나탈리오바댜갤러리에서는 바로 이 쉬르레알리즘의 슬로건이 되었던 로트레아몽의 싯구를 재현한 설치작품, 사진, 비디오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봄같이 따스한 2월, ‘누벨바그의 대모’인 아네스 바르다를 만났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숱이 많고 밝은 갈색 머리의 한가운데에 마치 하얀 빵모자를 쓴 것 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하여,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Q. 전시 제목이 ‘비정형의 3부작’입니다. 모든 작품이 3부작인 것은 금방 알 수 있는데, 왜 ‘비정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셨는지요?

A. ‘비정형’이란, 어찌보면 정상이 아니라는 의미와 무언가 특별하다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3부작이지만, 뭔가 익숙하지 않고, 폭력적이기도 하고, 무엇이 모자란 것도 같고, 독창적이라는 의미로 ‘비정형’이라는 형용사를 붙였어요. 


Q. 로트레아몽의 싯구를 재현한 ‘해부탁자, 재봉틀, 우산’으로 구성된 설치작품을 만드신 이유는요?

A. 미술사에서 쉬르레알리즘 운동은 아주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앙드레 브르통은 알지만, 로트레아몽을 거의 몰라요. 그는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특히 해부탁자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라고 쓰고 있어요. 이 표현을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한 쉬르레알리스트들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번 전시 주제가 ‘3부작’이고, 또한 이 시에서도 세 가지 중요한 오브제가 등장하고 있어서 이 설치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신의 영화는 한국에서도 유명하고 자주 상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전시를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A. 2005년, <파타투토피아(Patatutopia)> (2003, 설치작품)를 서울의 한 미술관에 전시했고, 그때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이삭 줍는 여자(Les Glaneurs et la Glaneuse)>도 상영했어요. 


Q. 당신의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파타투토피아>는 무슨 뜻입니까? 

A. <파타투토피아>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이삭 줍는 여자>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이 영화에서 나는 아주 많은 ‘감자’(파타트)를 촬영한 후, 내 창고에다가 두었습니다. 그 중에 운 좋게 하트 모양의 감자들이 있어서 관찰도 하고 촬영도 했습니다. 놀라왔던 것은 이 감자가 늙어가면서 동시에 싹을 틔운다는 것입니다. 이 감자들은 숨을 쉬고 있었고, 이러한 변형은 정말 대단하고 신기했어요. 평범하고 못생긴 감자들이 ‘혼동의 세계’(카오스, 죽음)와 화해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싹 틔웁니다. 이처럼 ‘감자’들은 나와 함께 ‘유토피아’를 공유하게 된 것이지요.

* ‘파타투토피아’는 ‘파타트’(감자)와 ‘유토피아’를 합친 조어


바르다의 설치작품은, 오랫동안 버려진 장소처럼 벽의 틈새로 식물과 이끼가 자라고, 바닥에는 벽이 허물어져 떨어진 잔해가 쌓여간다. 해부탁자 위로는 오랜 시간이 흐른 듯 이끼가 뒤덮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낯설게도 해부탁자와 재봉틀은 새 것으로 반짝 반짝하기까지 하다. 우산도 낡아서 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찢겨진 듯 하다. 이 세 개의 오브제의 만남, 그리고 이 오브제들과 시공간의 만남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낯설며 조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해부탁자, 재봉틀, 우산’을 재현하며 ‘만남의 신비’를 아름답게 표현해 왔다. 그런데, 바르다의 설치작품에는 거칠게 찢어진 우산, 어정쩡하게 놓여진 오브제들, 이 오브제들 위로 겉도는 이상한 시공간 때문에 ‘만남의 신비’보다는 ‘폭력’의 느낌이 앞선다. 사실 너무나 다른 것들의 우연한 만남이 아름답게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그리고 거의 폭력에 가까운 부딪힘이 있어야 가능할 수 있음을 바르다는 예민한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은록(1962- )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철학 및 인문과학 박사. 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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