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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보적 컬렉션이 아니라면 독보적 건축으로 -명품의 전략, 미호미술관

강철

2,000곳이 넘는 유적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교토는 고전미술이 워낙 강해 현대미술이 좀처럼 눈에 띄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교토를 처음 방문하는 이에게 현대미술관을 먼저 권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교토 시내의 오래된 사찰과 신사, 성곽 등의 전통적 속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호소미미술관, 라쿠미술관, 가와이간지로기념관 등이 각각의 장르적 계승으로 고전적 풍성함을 증폭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미술이 없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상대적 빈곤이지, 현대 미술의 볼거리가 넘치는 곳이 교토이다.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면 2006년에 개관한 ‘교토국제만화뮤지엄’이다. 이는 ‘일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보적 컬렉션의 뮤지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릉도원(武陵桃源 )을 형상화한 I.M.페이 건축의 정수 미호미술관(武陵桃源 Miho Museum)


각성제 또는 신경안정제로서의 미술관

2011년 카사 브루터스(Casa Brutus) 출판사에서 발행한 『일본 미술관 베스트 100 가이드』를 참조하면 교토에서 1시간 내외로 떨어져 있는 사립 미술관을 몇 개 추천한다. 아늑한 변두리에 위치한 이러한 유형의 미술관은 독보적인 컬렉션의 명성보다 독보적 건축, 경관, 레스토랑 메뉴 등 다른 감동으로도 관객에게 어필한다. 야마자키시의 아사히맥주 오아먀자키산장미술관은 기존 산장 건물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융합된 형태이고, 비와코 호수 근처의 사가와미술관은 경치와 어우러진 멋진 미술관이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객관적인 유명세로 널리 알려진 곳은 시가현의 미호미술관(www.miho.jp)인데, 이는 I.M.페이의 건축 예술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호미술관에는 이집트, 서아시아,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등 놀라운 컬렉션과 특별전이 꾸준히 열리지만 전시 컬렉션보다는 건축의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만든 홍보 영상이나 리플릿을 보더라도 I.M.페이의 건축 스토리가 컬렉션보다 우선이다.


미술의 감동은 시신경을 통한 그것도 있지만, 온몸의 세포가 기억하게 되는 공간감에서 그 여운이 오래간다. 그래서 교회 건축 안에 놓여 있는 미술품을 막상 접하면, 도판에서 익히 보았던 느낌과 매우 다르게 복합적으로 체험된다. 웅장한 공간감 속의 일부, 실제 스케일과 채광이 도판 제작을 위한 특별한 앵글이 아닌 일반 눈높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명작이라는 작품을 애써 찾아가 생생한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도판 이하의 감상을 할 때도 종종 있어 사람들의 뒤통수만 기억나는 명작도 있다. 이렇듯 오리지널 작품의 감상은 변수가 큰 반면, 미술관 건축이란 비교적 일관되고 평등한 교감이다. 일본의 현대미술관에 가보면 우리가 아는 서양 미술의 거장의 것도 제법 있지만, 독보적이고 기념비적이라 하기는 어렵다. 독자적인 콘셉트와 독특한 특별전으로 미술관 가치를 높이지만, 서양 프레임에 갇힌 동양의 관객들에게 전시보다 건축을 홍보하는 것이 현명한 수단일 수 있다. 영구불변의 건축 미학이 소문으로 재빠르게 퍼지면 미술관 컬렉션 홍보는 저절로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만명의 범재보다 한명의 천재를 우선하는 원칙

화려한 왕궁을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서양의 사례를 보더라도 미술품 감상이란 담는 공간에 따라 변수가 된다. 음식이 아닌 그릇의 논리인지라, 새롭게 짓는 미술관 건축은 호와 불호가 언급되는 대중적 평가를 받는 구조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미술관이 끊임없이 만들어지지만, 그 건축을 다시 보고 싶어서 가는 미술관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최고미술행사인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장 역시 전시내용이야 정상급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건축에 대한 몸의 여운이 남아 매번 발걸음이 저절로 향하는가? 심지어 가장 최근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건축에 대해서 환호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독보적인 컬렉션을 구축하려면 한세대에 걸쳐 혼을 담아야 하고, 힘들게 준비한 특별전을 알리려면 매번 홍보에 열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감동을 추가할 수 있는 효율적 수단은 ‘건축’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분명히 김수근과 같은 천재 건축가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제2의 공간 사옥, 제2의 경동 교회를 설계하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 많다는 증거다. 천재 예술가를 더 이상 질시하고 배척하지 말고 인정하는 사회적 ‘지성’, 그리고 세계적 건축을 남기려는 건축주의 ‘용기’가 만나서, 그렇게 태어난 미술관은 이 땅의 커다란 유산이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관객은 그 정도의 수준을 기꺼이 감상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강철(1972- )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김달진미술연구소 편집연구원, 월간디자인 수석기자 역임. 현 서울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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