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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펑정지에, 외사시의 미학

심은록

펑정지에(Feng Zhengjie, 1968-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화장이 진한 한 젊은 여성의 확대된 얼굴이 캔버스를 채운다. 도드라진 광대뼈를 지닌 중국 여성의 분칠한 얼굴은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돈다. 도발적인 붉은 입술만큼 강렬한 핑크빛이나 초록색 머리를 가지고 있다. 이 여인의 그림자나 배경도 핑크빛 혹은 초록색이다. 이 강렬한 청홍색 계통의 대비보다 시선을 더 끄는 것은 눈이다. 눈의 크기에 비하면 눈동자는 아주 작은데, 외사시(外斜視)이다. 화룡정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그림이다. 완벽하게 섹시하고 아름다울 뻔 했던 여성이 눈 때문에 기묘하게 되었다. 어색한 청홍대비와 외사시는 관람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고의적인 불편함’의 이유를 알기 위해 펑정지에의 베이징 아틀리에를 방문한다. 그의 아틀리에는 그의 작품과 똑같은 분위기다. 초록색 바탕의 빨간색 꽃무늬가 있는 쇼파, 초록색 작업 테이블과 빨간 의자, 하물며 쓰레기 봉투까지 핑크빛이다. 그의 아틀리에는 그림, 설치, 조각 등이 미술관보다 더 규모있게 잘 배치되어 있다.


펑정지에의 베이징 아틀리에,  photo : simeunlog


펑정지에


Q. 현대 미술의 특징 중의 하나가 옛날 고대 그리스나 동양 전통처럼 채도가 높은 색들의 귀환인 것 같다. 선생님 작품에 흰색, 노란색, 검정색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청홍색조가 지배한다. 그 이유는?

A. 당신 말대로 청홍대비는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 회화에서는 이러한 색이 드러나지 않지만, 민간예술, 언어, 의류나 주택에서는 붉은 계통과 푸른 계통이 함께 사용되어 왔다. 예를들어, 건축물에는 붉은 벽과 푸른 기와, 옷에서도 붉은색과 푸른색이 사용되었고, 중국의 사자성어에도 붉은 남자와 푸른 여자, 붉은 꽃과 푸른 잎처럼 두 보색이 비교되어 자주 쓰였다. 중국 전통 민간예술과 언어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 광고에서도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이같이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대비적인 색이 많이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상에는 조합하기 어려운 색깔인 것은 사실이다. 


Q. 당신의 초기 작품들이 상당히 흥미롭다. 놀라운 것은 <해부연작>에서 다소 차분한 톤이지만 청홍대비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A. <해부연작>은 나 자신을 ‘그림 속에서’ 해부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것과 내가 학교 밖의 대중문화에서 겪는 큰 차이에 곤혹을 느꼈다. 그래서 본질을 찾아보겠다는 방식 중의 하나로 <해부연작>을 시작했다. 표면의 현상을 벗겨내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작품들의 내부로 들어가자는 의미였다. 그 때부터 붉은색과 푸른색의 조합이 규칙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우연의 결과였다. 


Q. 우연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결과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진지한 청홍대비에서 점점 키치적인 화려한 대비로 변화가 일어난다. 키치적인 듯 하면서도 문득 문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때로는 섬뜩하기도 하다. 이 아틀리에에 전시된 작품에도 초록색 바탕에 해골이 있고 그 위로 장미 꽃송이들이 해골과 오버랩된다. 화무십일홍인가?

A. <꽃이 바람에 따라서 날린다>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꽃은 어차피 날리게 되어있고, 물은 어차피 흐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생명, 행복, 죽음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펑정지에는 “나는 항상 두 면을 본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청색과 홍색, 고전(민속예술과 언어)과 현대(대중예술과 광고), 내면과 외면, 죽음과 화려함, 예술과 자본 등 양면을 모두 보려고 한다. 양쪽을 동시에 보자니 펑정지에 그림 속의 인물들의 눈은 자연스레 외사시가 된다. 플라톤 이후 근대까지는 두 눈을 가지고도 내사시처럼 한 세계만 볼 것을 요구해 왔다. 물론 여기서 외사시나 내사시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펑정지에는 이 두 세계를 조급하게 섞지 않는다. 청홍을 섞어 보라색으로 만들지 않는다. 청색과 홍색이 그대로 존중된다. 두 다른 세계에 동일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고의적인 어색함과 불편함이 드러나며, 이는 펑정지에 예술을 특징짓는 공존의 아름다움, 즉 ‘외사시의 미학’이다.



심은록(1962- )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철학 및 인문과학 박사. 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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