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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불로뉴 숲에 띄운 유리범선, 럭셔리란 이런 것

이영란

요즘 멋쟁이들 사이에 ‘파리에 가면 꼭 찾아야 할 핫플레이스’로 꼽히며 개관 1년 만에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한 루이비통미술관. 작년 10월 문을 연 이 미술관의 출발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품의 대명사’ 루이비통 메종을 이끄는 베르나르 아르노(1949- ) LVMH 회장은 15년 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찾았다. 그는 은빛 티타늄 건축의 기묘하고도 압도적인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프랑크 게리표 미술관’에 반해버린 그는 곧바로 건축가와 만나 오랜 꿈을 털어놓았다. 무려 70개의 브랜드를 챙기느라 ‘영감’이 그 무엇보다 필요했던 그는 참신한 아트와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 컬렉션이 쌓여가자 ‘남다른 미술관’을 꿈꿨던 아르노는 해체주의 건축가 프랑크 게리와 의기투합해 마침내 파리에 우아한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루이비통미술관은 과거 왕들의 사냥터였고, 지금은 파리시민들의 휴식터인 불로뉴 숲 속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내에 들어섰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는 2006년 말 이 금쪽같은 공원 중 1ha를 뚝 떼어, 루이비통에 내주었다(55년간 무상임대 후, 파리시에 기부하는 조건이다). 설레는 맘으로 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유서 깊은 공원의 고목들 사이로 12조각의 거대한 유리 돛이 솟아오른 특이한 형상에 놀라게 된다. 어떤 이는 범선을, 어떤 이는 구름을 떠올리는 미술관은 각기 다른 형태와 기울기의 유리판 3,584장을 퍼즐처럼 끼워 맞춰 유리 장막을 하늘에 올렸다. 그 밑으론 철골과 석판, 물이 어우러졌다. 일반 건축주라면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 때문에 수용하기 힘든 디자인을 아르노 회장은 기꺼이 수용해 5년 만에 완공해냈다.


건평 11,700㎡ 총 6개 층으로 이뤄진 미술관은 유리판의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듯 어느 곳 하나 똑같은 공간이 없다. 그야말로 비정형의 미술관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층, 테라스(3, 4층)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11개의 전시실을 돌아보는 재미는 자못 쏠쏠하다. 옥상의 테라스에선 불로뉴 숲의 울창한 녹음과 함께 라데팡스의 마천루들, 에펠탑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프랑크 게리의 유리 돛에 투영된 파리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물론 테라스 곳곳에도 아르헨티나 출신인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토템을 연상케 하는 설치작품 등 여러 미술품이 놓여 있어 건축과 도시, 예술을 함께 음미할 수 있다.


루이비통미술관은 20-21세기 미술을 조망하고, 당대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독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술관답게 철저하게 현대미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동시에 아르노 회장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미술이 품고 있는 예술적 창조력을 대중과 공유하며, 창조의 선순환이 이뤄지길 소망하는 게 그의 비전이다. 특히 20여 년에 걸쳐 이뤄진 아르노 회장의 컬렉션과 재단의 수집품을 보여주는 컬렉션 전시, 기획전, 장소 특정적인 반영구 설치작(커미션작업)에선 명품기업 수장의 취향을 여실히 읽을 수 있다. 지하층의 그로토(동굴)를 장엄하게 꾸민 올라파 엘리아슨의 건축적 작품은 특히 그러하다.


개관전시 3부 안내판이 내걸린 루이비통재단미술관


루이비통미술관은 총 3부로 이어지는 개관전의 마지막 전시를 진행 중이다. 내년 1월까지 열리는 3부 전시의 타이틀은 ‘파피스트, 뮤직/사운드’이다. 현대의 팝아트와 음악,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예술을 집중적으로 돌아본 기획전이다. 팝아트 부문에는 워홀, 바스키아, 길버트&조지, 리처드 프린스 등 우리에게 낯익은 슈퍼스타들의 대표작이 대거 나왔다. 일명 ‘폭탄 머리 자화상’으로 불리는 워홀의 자화상 연작, 바스키아의 대작 ‘그릴로’, 길버트&조지의 트립틱(3점 연작)이 특히 인상적이다. 모두 아르노가 작심하고 수집한 작품들이다. 뮤직/사운드 파트의 출품작은 비교적 혁신적인 것이 공통점이다. 거침없이 총질을 해대는 영화속 인물들을 계속 틀어주는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작품, 더글라스 고든의 영상작품이 가장 압도적이다. 그러나 루이비통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미술관이다. 프랑크 게리의 디자인이 워낙 파워풀해서 작품들은 살짝 묻히는 느낌이다. 여행과 건축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루이비통답게 건축이 도드라지는 뮤지엄, 그래서 앞으로도 이 유니크한 건축은 오래오래 인구에 회자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영란(1957- ) 이화여대 신문방송학 학사, 세종대 언론문화대학원 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석사. 전 헤럴드경제 편집국 부국장(미술전문 선임기자) 역임. 이화여대, 수원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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