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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도시의 인상

황정인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의 전시 프로그램. 사진ⓒ황정인


한 도시의 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된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시청을 비롯해 19·20세기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그만큼 인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공공의 영역에서 필라델피아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내는 시각예술의 형태들,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의 전시 프로그램(Airport’s Exhibition Program, 이하 공항프로그램)과 필라델피아 벽화예술 프로그램(Mural Arts Philadelphia, 이하 벽화프로그램)이다.

먼저 1998년 시작된 공항프로그램(phl.org/at-phl/art-exhibitions)은 공항을 통해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시각예술 전시로, 비행기 이동이 잦은 미국 특성상 많은 이에게 예기치 못한 경험을 선사하면서 필라델피아의 대표적인 공공예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 평균 공항 이용객 8만4,000명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6개 터미널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셈이다. 아트 디렉터이자 수석 큐레이터를 담당하는 레아 더글라스가 전시, 제작, 구성, 행정을 담당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예술작품 전시와 다양한 이벤트를 총괄한다. 퍼센트 미술(Percent for art) 정책에 따른 20개의 영구 전시품 외에도 6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23개의 현대미술 전시가 있어 더 눈길을 끈다. 안전과 보안이 철저한 공항의 특수 환경을 고려할 때, 매월 평균 3-4개의 전시가 교체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 선정 과정으로, 특별한 선정 위원회 없이 학예팀이 도시 곳곳에 자리한 다이나믹한 예술 활동을 직접 리서치·섭외·전시하면서 공항 구석구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도권 미술에 치중하지 않고 이곳에 거점을 둔 작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되, 공예, 디자인, 회화, 조각, 사진, 영상, 공연, 커뮤니티 아트, 거리예술 등 장르 전체를 포용하면서, 그것이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음을 기획으로 보여준다. 20주년 기념 특별전 ‘IT’S A WRAP: 20 FOR 20’(2018.8-2019.7)에는 필라델피아 작가 20명이 참여하여 공항 내부의 건축적 공간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공항 이용객의 이동시간 동안 독특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현재까지 약 430여 건에 달하는 전시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지역의 주요 문화예술기관과의 연계도 활발하다.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의 전시 프로그램. 사진ⓒ황정인


또 하나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공공예술 프로젝트 중 하나인 벽화프로그램(muralarts.org)이다. 1984년 출범한 필라델피아 반그래피티 네트워크가 1986년에 설립한 벽화예술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작가이자 디렉터였던 제인 골든은 도시경관 및 사회문제로 자리했던 그래피티의 움직임을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으로 전환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많은 그래피티 작가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도시의 빈 벽에 벽화를 그려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 범죄예방과 심리치료를 통한 개인·사회적 트라우마 극복, 지역사회의 갈등 해소, 낙후지역 재생, 예술가의 복지문제, 범죄자의 사회교화, 직업훈련 등의 다양한 사안을 프로그램의 기획, 지역사회 관계수립, 실행, 유지, 관리의 단계에 적용해 하나의 종합적인 문화 예술 활동이자, 사회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는 데에 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마다 300여 명의 작가가 이곳에 일정 기간 고용되어 활동했으며, 매해 50-100개의 완성도 높은 벽화 프로젝트가 도심 곳곳에서 진행된다. 

두 프로그램 모두 제도권 중심의 미술을 넘어, 도시의 미관과 지역사회의 생태, 문화 예술적 움직임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잘 접목해 오랜 기간 도시의 인상을 구축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황정인(1980- )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문화산업과 석사. 전 사비나미술관·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현 비영리연구단체 미팅룸 대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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