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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영국 문화예술정책의 우경화와 ‘팔길이 원칙’의 균열

김연재

현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1964- )은 보수당 내에서 강경파 노선의 대표주자이자 EU 회의론의 옹호자였으며 결과론적으로 브렉시트(Brexit)의 최종 절차를 이끈 정치계 인사로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총리 취임 시기인 2019년 당시 EU 탈퇴 협약 비준을 위해 의회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조기총선을 시행했는데, 투표 결과 노동당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 기반을 더욱 굳건히 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이 문화예술분야에서 제기됐는데, 특히 이들은 영국 문화정책의 대표적 운용 주체인 잉글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의 원칙적 지침으로 적용되고 있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의 실효력이 위기를 맺고 있음을 지적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BLM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강물에 내던져진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


통상적으로 팔길이 원칙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문화정책으로서 예술의 자율성과 문화예술기관의 운영적 독립성을 뒷받침하는 원리로서 간주되어 왔다. 물론 이 원칙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도 아니고 영국 내부에서도 불완전한 정치적 레토릭으로서 그 의미를 격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과 불간섭 책무’라는 기조는 관련 이해주체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슬로건으로 인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원칙에 대한 영국 내부의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를 촉발시킨건 일명 ‘Anti-woke’ 의제로, 작년 6월 영국 브리스톨에서 Black Lives Matter(BLM) 시위대가 17세기 활동했던 노예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1636-1721)의 동상을 강물로 던져 훼손시킨데 대한 우려의 시선이 담긴 현 정부의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의 과잉진압에 의해 숨을 거두면서,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취지에서 결행된 BLM의 행동주의 운동이 영국 정부의 우경화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Anti-woke’ 의제는 명확한 번역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Woke는 사회적 불평등 관련 이슈에 대한 진보적 성향의 관점을 지칭한다. 미국에서 유래된 Woke는 최근 서구 여러 국가들의 우익 정당이 좌익 세력의 정치적 운동을 폄하하기 위한 반어적 어법으로서 활용되고 있는데, 보리스 존슨을 위시한 내각 각료들도 이에 편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Anti-woke’의제는 영국 문화예술분야의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촉매로서 기능했는데, 현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 올리버 다우든(Oliver DOWDEN, 1978- )은 국립 뮤지엄,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히스토릭 잉글랜드(Historic England), 국립복권문화유산기금(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 잉글랜드예술위원회의 수장들과 진행한 회담에서 의제의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다우든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소수의 시끄러운 행동주의자(Noisy minority of activists)’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정부의 ‘Retain and explain’ 정책에 대한 문화예술기관들의 일방적인 준수를 요구했다. 이 정책은 역사적 동상들은 가장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제거된다는 뜻인데, 표면적으로는 영국에 산재한 수 많은 동상이나 기념물을 논쟁의 여지와는 별개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그 이면에는 문화예술기관들의 독립적 의사결정권을 최소화 시킨다는 맥락이 담겨있다. 이 사례는 정부와 문화예술계의 적정한 ‘팔길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의 시의성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 김연재(1981- ) 서울대 협동과정 미술경영 석사, 영국 레스터대학교 박물관학 박사. 『예술연구총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의 길』(한국예술연구소, 2021, 공저) 지음. 현재 한국미술이론학회 총무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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