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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창작과 도전, 공유와 연결의 공간, 메이커스페이스

황정인

필라델피아에 새롭게 문을 연 넥스트팹(NextFab) 전경 
ⓒ 제공 황정인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 활동의 기회가 줄면서 예술가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작업실 공간 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필라델피아에는 예술가, 그중에서도 개인 창작 공간을 중심으로 소기업을 운영하는 공예가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이들은 주로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창작과 판매를 병행하며, 작업실 운영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시, 아트 페어 등의 참여기회가 줄고, 창작 활동이 위축되면서 작업실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작가들은 가족들이 있는 다른 주로 이동하여 집안 한 켠에 최소한의 임시 작업 공간을 마련하거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예술가 레지던시에 지원하여 한시적으로 작업실 문제를 해결하고, 창작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현상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도심 속 창작 공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여 지점까지 확장, 개관한 공간도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창작자 및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설계를 직접 제작, 구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계와 공구를 갖춘 공동 작업실 혹은 열린 제작 공간,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를 운영하는 넥스트팹(NextFab)이다. 

메이커 운동에 힘입어 2000년대 초 북미지역에서 ‘팹랩(fab lab)’의 형태로 빠르게 퍼져 나간 메이커스페이스는 지역마다 커뮤니티의 성격과 구성원들의 형태에 맞게 다양한 운영방식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중 2009년에 설립된 넥스트팹(nextfab.com)은 펜실베니아주 남부, 북부 필라델피아와 델라웨어주 윌밍턴, 총 3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 미국의 대표 메이커스페이스다. 대다수의 팹랩이 디지털 첨단 기술을 응용한 제조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는 것과 달리, 넥스트팹은 공예의 역사가 깊은 필라델피아의 특성상 전통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모두 응용한 제작 전반에 대한 공간, 기술, 인력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작업 환경은 2D 프린팅과 사진, 3D 프린팅과 스캐닝, 레이저 커팅, 각종 디자인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기술을 비롯, 금속공예와 텍스타일, 목공 등 전통적인 제작 방식과 기술의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각종 설비를 전담하는 전문기술자가 1:1로 이용에 관한 안내를 돕는다. 이곳의 이용자는 기본 학습 단계에서부터 전문가 단계, 창업 및 산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회원 개인의 역량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공간은 최소 1달 혹은 1년 단위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여 제작 공간 및 설비 일체를 이용하는 회원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또한 넥스트팹은 공동 창작 공간의 이점이라 할 수 있는 개인 작업자 간의 교류 외에도, 지역 문화예술계 인프라와 긴밀히 협업하면서, 지역 사회 내 기관 간의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술기관 및 단체, 미술 전문 매체, 미술대학과 협업하여 컨퍼런스 개최, 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과의 협업(시설, 창작 공간 및 결과물 전시)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넥스트팹과 같은 메이커스페이스는 실업, 이른 은퇴 후 창업을 통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미술대학 실기실 폐쇄로 임시 작업 공간이 필요한 재학생, 대안적 형태의 작업 공간을 찾고 있는 예비 작가들, 기성 작가들에게 매우 유용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0년대 초 도입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내 메이커스페이스에 대해 일각에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장비를 갖춘 공간이 단순 취미활동을 추구하는 동호회 모임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메이커스페이스는 본래 열정 가득한 제작자들의 동호회 문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정부 정책에 맞춘 물리적 시설 구축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안에 내재한 창작과 도전, 공유와 연결, 공동체 문화, 협업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가운데, 공간마다 특색을 살리고 다양한 이용객을 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운영 전략과 프로그램, 전문가 풀, 기관 간의 네트워킹이 뒷받침된다면, 메이커스페이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황정인(1980- )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대 대학원 문화산업과 석사. 전 사비나미술관·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현 비영리연구단체 미팅룸 대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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