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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왕칭송 / 서른 살의 전환점, 그때 작가가 되었다

강철

성공한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한결같이 우쭐거리거나 으스대지 않는다. 언제나 진중하면서도 소박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서 정치나 비즈니스 기운을 찾아 볼 수 없고, 심지어 권위적인 선생의 분위기도 없는, 딱 예술가의 느낌이다. 왕칭송(王松 1966-)은 그런 작가다. 왕칭송은 다큐멘터리 기술방식에 머물던 중국 현대 사진을 시각 예술의 한 장르로 끌어올린 중국의 대표적 1세대 사진작가다. 그는 특유의 과장된 세트와 극적 요소를 사용해서 급변하는 중국 정치·사회·문화를 냉소하고 풍자하는데 능숙하다. 격동의 시대를 겪은 만큼이나 그의 생김새도 작업도 스토리가 많다. 북경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Q. 몇 살 때부터 예술가가 되려고 했나?

A. 나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화가가 되려고 쓰촨(四川)미술학원으로 진학해서 회화를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과 베이징에 산다. 내가 표현하려는 방법이 회화보다 사진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1996년부터 작업 미디어를 사진으로 바꿨다.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작업한다. 1995년 29살이었는데, 그 해에만 5번의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갈 때마다 경찰이 쫓아냈다. 도대체 나는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했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하기 시작했다. 철거민에 대한 고민과 개인적 경험이 몰입된 그 곳에서 작업 일부분을 표현했다. 그리고 항상 중국 사회의 변화를 주목한다.


Q. 작가로서 언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나?

A. 1996년 30살이 되었는데,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그저 하루하루 배를 채워야하는 시절이었다. 당시 친형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했다. 하루는 형에게 돈을 좀 달라고 했는데, 큰 호통을 치면서 ‘나이가 서른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살면 어떡할 거냐고’ 혼쭐을 냈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30살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나이다. 나는 술을 전혀 못하는데, 원명원(북경 소재의 정원)에 가서 독한 술을 마시면서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이제 무조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그때가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지만, 그때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Q. 사회적으로도 약자였고, 예술적으로도 약자였나?

A. 미술대학을 마치고 베이징에 처음 올라왔을 때, 다른 작가들은 해외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는 베이징에서라도 어떻게 한번 전시를 해볼까 했다. 많이 늦은 편이었다. 그러다 1997년도 첫 해외 전시로 영국에 가게 되었는데, 말도 안통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20불짜리 호텔을 찾으러 하루 종일 찾아 다녔다. 1999년도에 다시 영국에 갔는데, 이번에는 25불짜리 방을 찾아 다녔다. 마찬가지였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맥도날드와 길거리 핫도그를 사먹는 일이었다. 예술가는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면 외롭다. 그래서 영국에는 10년 동안 가지 않았다. 2008년 다시 런던을 찾았을 때에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말 많은사람들이 나를 서로 만나려고 했다. 소위 유명세를 탄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 가서도 미술관 관계자들이 왕칭송이 왔다며 매우 환대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느낌으로만 끝이다. 다시 집에 오면 일상이 시작된다. 내 일상이 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게 나의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유명세와 상관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자기의 작업을 꾸준히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Q. 예술과 가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A. 중국도 예술가의 독신과 이혼이 일반인보다 많은 편이다. 베이징에는 많은 작가들이 모여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올라올 때, 심지어 아예 이혼을 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올라와서 소위 뜬 작가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가정보다 예술이 중요한 이들이다. 나 같은 경우는 예술과 가정이 둘 다 똑같이 중요하다. 가족 때문에 작가로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Q. 신작을 위해서 무엇을 하나?

A. 다른 작가들은 책이나 여행 등을 통해 작업의 영감을 찾는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걷기’와 ‘TV보기’다.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많이 못 걷는데, 예전에는 하루 종일 걷기만 했다.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발견했다. 지금은 TV를 본다. TV 안에는 정치·경제·문화·드라마·맞선 보는 쇼까지… 모든 것이 다 있다.


Q. 한국에도 서른 살이 된 작가들이 많다.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A. 예술이라는 것은 조언이나 권유를 한다고 해서 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 ‘경찰’과 ‘친형’이 나를 변화시킨 요인이다. 자기만의 경험에 대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결정을 하려면 자기만의 확신, 꼭 경험에 묻어난 확신이어야 한다. 그러면 자기 세계를 바꿔주는 전환점을 강력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뭘 해야 할 지 그것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 그 답을 찾다보면 좋은 작품으로 나올 것이다. 꼭 서른이란 나이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기에 전환점은 모든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계속 고민해도 모르겠으면 계속 허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느끼게 되면 그때 하면 된다.


Q. 예술 말고 무엇을 하고 싶나?

A. 예술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 왕칭송 작가는 2011년 4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포토2011에 참여한다.



강철(1972- )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김달진미술연구소 편집연구원, 월간디자인 수석기자 역임. 현 서울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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