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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 그 이면의 얼굴

장동광

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 전시장 전경, 베네치아 자르디니공원 ⓒ 장동광


1. 한국관의 이면
필자는 이번 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와 주요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 11일간의 일정으로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여간 지속된 전 인류적 단절의 시대에서 새로운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조심스러운 거리두기 해제가 국외 출장을 다녀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엔날레 공식 개막전인 프리뷰에 도착한 베네치아는 4월의 기운처럼 다시금 많은 관광객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사실 이번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지난해 열렸어야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의 거센 여파로 연기되어 올해 4월 23일부터 11월 27일까지 장장 7개월에 걸친 대장정에 올랐다. 예술총감독은 뉴욕 하이라인공원의 예술총괄큐레이터를 역임한 이탈리아의 체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 1977- )가 맡아 “몽상의 우유(The Milk of Dreams)” 라는 주제로 아르세날레에서 본전시가 개최되었고, 본전시와 더불어 자르디니공원에서는 80여 개의 국가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관 전경 , 베네치아 자르디니공원 ⓒ 장동광


이번 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는 이영철(1957- ) 예술감독이 김윤철(1970- ) 작가를 단독으로 선정하여 참가하였다. 김윤철 작가는 한국관 전시주제로 ‘나선(gyre)’을 제시하면서 총 6점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부풀은 태양(Swollen Sun)>, <신경(Path of Gods)>, <거대한 바깥(Great Out-doors)> 이라는 세 가지 스토리에 착안하여 사물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문제에 관한 로우테크와 디지털 영상을 결합한 테크놀로지아트를 선보였다. 한국관 중심을 차지한 지네 혹은 뱀과 같은 형태의 움직이는 대형설치물은 많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5점의 다른 설치물과 함께 대단히 분절적이고 기계중심주의일뿐더러 제목이 주는 형이상학적 주제의식과 더불어 유기적으로 공간을 통합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호하고 기계완결주의적 작품들은 벽면을 대상으로 한 세포분열 형상의 드로잉들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해 그나마 날 선 이성의 긴장감을 이완시킬 수 있었다. 조형적 완벽성이나 기계적 극단성이 어떤 예술의 지평을 향해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가. 적어도 현대예술의 그윽한 담론의 지평에 눈뜨게 하는 주제의식의 발현 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커미셔너와 문화예술위원회의 불협화음이 보여 주었듯이 그러한 제도적 모순이 그렇게 되도록 그저 방치해 버린 듯한 작가 중심의 자기집착적 에고의 결말이라고 누가 그렇게 단정적으로만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2. 특별전의 이면
주지하다시피 베네치아비엔날레는 거대한 현대미술의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그것은 자본과 권력, 국가적 일등시민과 이등시민과 같은 계급적 세력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각축장인지도 모른다. 최대 관심사였던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미국 작가 시몬 리(Simone LEIGH, 1967- )가 본전시부문, 영국관 대표작가 소냐 보이스(Sonia BOYCE, 1962- )가 국가관부문을 차지하였다. 평생공로상은 독일의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 1956- ), 칠레 출신 뉴욕 거점 작가인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1948- )가 수상했다.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그 이전에 비해 ‘여성작가’의 역량과 정체성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던 행사로 기억될 듯하다. 필자는 특히 이번 베네치아비엔날레를 둘러보면서 인상 깊었던 특별전으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 )전(4.20-10.9, 아카데미아미술관 Gallerie dell’Accademia di Venezia, 팔라초맨프린 Palazzo Manfrin)과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전 (3.26-10.29, 두칼레궁전 Palazzo Ducale)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작가로서는 박서보(1931- ), 하종현(1935- ), 이건용(1942- ), 전광영(1944- ) 등의 특별전이 유서 깊은 팔라초에서 열려 한국 원로작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기념할만한 일이었다. 


‘아니쉬 카푸어’ 전시 전경, 베네치아 팔라초맨프린 ⓒ 장동광


무엇보다 아니쉬 카푸어는 마치 붉은 선혈이 폭발한 듯한 현장설치작업으로 거침없는 창작의 자유정신으로 동시에 개최되는 두 곳의 전시장을 뒤덮고 있었다. 반면에 베네치아공국 궁전이 가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명 ‘두케의 궁전’ 연회장을 전체적으로 둘러싼 안젤름 키퍼의 설치작업은 그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종교적 숭고성을 자아내는 회화적 조율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평적으로 표현하자면, 카푸어가 현대미술의 표현가능성에 관한 확산의 극단적 몸짓이었다면, 키퍼는 정신적 수렴으로서 그의 의도에 기초하자면 괴테(Goethe)의 『파우스트(Faust)』에 대한 비극미에의 숭고한 공명이었다. 


‘안젤름 키퍼’ 전시 전경, 베네치아 두칼레궁전 ⓒ 장동광


3. 이탈리아 예술정신의 이면
필자는 이번 베네치아비엔날레 일정 중 밀라노의 두오모대성당을 비롯하여 ‘티치아노’(Tiziano, 1488/90-1576)전 (2.23-5.6, 팔라초 레알레 Palazzo Reale), 한국 출신의 떠오르는 작가이자 2016년 뉴욕구겐하임의 휴고보스상을 수상한 ‘아니카 이’(Anicka YI, 1971- )전 (2.24-7.24, 피렐리행거비코카미술관 Pirelli HangarBicocca) 등을 둘러보고 왔다. 
이번에 관심을 갖고 본 곳은 두오모대성당 옆에 건축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가 1860년대에 설계하여 건축한 ‘갤러리아(La Galleria)’였다. 그곳은 현재도 프라다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명품 매장이 입점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쇼핑타운이다. 


‘아니카 이’ 전시 전경, 밀라노 피렐리앵거비코카미술관 ⓒ 장동광


밀라노의 건축대학 교수인 오르넬라 셀바폴타(Ornella SELVAFOLTA, 1949- )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비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라고 표현했듯이, 필자는 이곳을 처음 돌아보면서 그 장대함과 화려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한 역사적 건축물을 산책한 시간이라는 것은 과거의 정신이 현재로 내려와 나에게 예술정신의 위대성에 대해 말을 거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밀라노라고 하는 도시 자체가 역사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예술의 현재성을 증거하는 거대한 화석층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르네상스기를 추동한 베네치아화파가 그린 유리 없는 원작들과 현대미술의 담론을 주도하는 싱싱한 활어들을 그대로 포획하여 자국의 문화적 자원으로 재생해 내는 그 문화적 힘에 불현듯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건축과 미술의 역사가 과거에 정체되지 않고 동시대의 사람과 긴밀히 호흡하게 하려는 이탈리아의 공공적, 기업적 시도는 이후 밀라노에서만 목격되지 않았다. 코모 호수와 벨라지오, 피렌체의 궁전과 우피치미술관, 피사, 투스카니, 시에나로 이어지는 일정에서도 이탈리아의 문화와 관광, 이딸로(Italo)와 같은 사설 열차의 디자인, 길거리의 상점과 상품조차 남겨진 과거의 유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의 정신을 그 위에 개입시키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박제된 역사의 시간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아니라 끝없이 현재와 호흡하려는 시대정신이 그 안에 물결치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한때 이탈리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닐까 하는 필자만의 소회가 독단적이라고 치부될지라도… 

- 장동광(1960- ) 서울대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홍익대 대학원 미술비평 박사 수료.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안양문화예술재단 공공예술부장, 제1, 2회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총감독 역임. 현 한국도자재단 상임이사(사업총괄단장). 제1회 한국미술협회 <자랑스런미술인상(큐레이터 공로부문)> 수상. 『유리지: 금속공예 40년의 여정』(2010, 나비장) 편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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