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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한국현대회화전’의 전시기획자 엘렌 P. 코낸트 여사 자택 방문기

양은희

2020년 5월경 한 책을 마무리하다가 뉴욕의 월드하우스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1958)을 기획했던 엘렌 프세티(Ellen PSATY, 1921- ; 세티로 발음되기도 한다)와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남편 테드 코낸트와 결혼한 후 엘렌 코낸트(Ellen P. CONANT)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의 아들 제임스 코낸트를 통해 놀랍게도 10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필자는 60여 년 전 역사 속의 인물과 소통하게 되었다.



서재에 앉아있는 코낸트 여사


당시는 일본미술 관련 저술 때문에 바쁘다고 했으나 2021년에는 필자가 보낸 질문에 조금씩 답을 보내 오면서 자연스럽게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코낸트여사는 본인의 약력을 보내주며 기억에 의존한 대답을 넘어서고자 했고 결국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보라며 자택의 지하실에 있는 자료를 보러 오라고 필자를 초대했다.
손님을 위한 방에서 머무르라는 친절한 초대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예전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뿐하게 다녀올 수는 없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쯤 방문하기로 약속 후 부스터 백신 접종에다 비행기 예약까지 했으나 변종 오미크론이 확산되자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지난 6월 16일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거쳐 코낸트 여사가 사는 뉴햄프셔 주로 향했다. 6월 17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코낸트 여사의 자택에 도착한 후 6월 22일까지 필자는 코낸트 여사의 일상, 아담한 집, 고령의 여사를 보살피는 6명의 사람들, 그리고 지하에 있는 자료와 가족 사진까지 수많은 서류 상자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집에 2004년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2층의 집안 곳곳에 오래된 그림과 책이 즐비했다. 여사는 부군의 건강이 나빠지자 여기로 이사를 왔고 이후 1층과 지하는 남편의 공간, 2층은 자신의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여사의 공간은 널찍한 침실과 화장실, 그리고 창고가 달린 서재로 되어 있었다.
부군이 사망한 후 1층은 집안일과 여사의 건강을 보살피는 도우미 등 여러 명이 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필자는 그 1층 맨 끝에 있는 방에서 시차 덕분에 줄어든 잠의 혜택을 보며 여러 자료를 촬영하고 정리했다.



코낸트 여사 침실에 걸려있는 김훈의 회화


코낸트 여사는 주로 2층의 침실과 서재를 오가며 활동하였고 식사도 도우미가 가지고 간 것을 드시곤 했다. 아침은 잉글리쉬 머핀에 버터와 잼, 차, 그리고 계란 프라이, 과일을 드셨고 점심, 저녁도 특별히 장수 식단이라 할 것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미국식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자 ‘할렐루야’라고 좋아하셨다. 간혹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필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어느 날 오후에는 1층으로 내려와 3면이 유리가 된 선룸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나는 새소리를 즐기며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살았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수확은 코낸트 여사가 소장한 한국미술작품, 수많은 편지와 브로슈어, 서적 등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카이브의 대부분은 일본 자료였으나 이응노, 이경희, 김훈 등 여러 작가의 크고 작은 작업이 벽에 걸려있거나 수장고에 있었고, 파일 박스에는 1956년부터 주고받은 편지와 사진들, 한국에서 사용했던 안내문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서예가 김기승과 이기우, 화가 박래현과 김환기, 함대정, 동양화가 김영기, 조각가 김정숙 등 여러 작가의 자료와 때로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인상적이었다. 이 자료들이 한국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필자가 매개자 역할을 하기를 바라셨다. 국내 미술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카이브에 소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양은희(1965- ) 뉴욕시립대(GC) 미술사 박사. 2022 정점식미술상 수상. 『방근택 평전』(2021),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진휘연 공저, 2017), 『뉴욕, 아트앤 더 시티』(2007, 2010) 등 저술.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등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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