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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말고르자타 마르가-타스(Malgorzata MIRGA-TAS)

구정원

스페인 안달루시아현대미술센터(Andalusian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말고르자타 마르가-타스 (Malgorzata MIRGA-TAS, 1978 - )의 개인전 ‘Remembranceand Resignification(추모와 재의의, 9.29-2024.3.31)’이 개최되고 있다. 미술관이 위치한 세르빌은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거장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와 수르바란(Zurbaran, 1598-1664) 등을 배출한 예술의 도시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큰 로마(Roma) 공동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 공동체는 본래 북인도에 뿌리를 둔 민족으로 약 1000년 전 자국을 떠나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마르가-타스의 선조 또한 폴란드 산악지역인 체르나 고라(Czarna Góra)에 정착하여 터전을 일구었다. 그렇다, 작가는 폴란드 태생의 로마 공동체인(Romani; 로마니)이다. 그들이 고수해온 인도-아리안계의 언어와 화려하고 다채로운 패턴의 의복은 로마 커뮤니티로서의 정체성을 지속시켜 준 중요한 요소이다. 달변가인 그들은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자손에게 삶의 지혜와 철학을 가르치며 대가족 제도 안에서 가족애를 더욱 공고히 한다. 또한, 탁월한 예술적 DNA를 가진 그들은 새로이 정착한 지역의 예술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는데 스페인의 플라멩코나 중동의 벨리댄스가 한 예이다.



Juana Vargas de las Heras, “la Macarrona”, 2023, 
Acrylic and fabrics on wood, 266×309.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ACCA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삶의 가치를 가진 그들의 유럽 정착기는 사실상 녹록치 않았다. 이주 당시 로마니인을 접한 유럽인은 처음에는 다양한 재능을 보유한 그들을 환대했으나 그들의 종교와 정치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마니인을 하루아침에 공동체 밖의 이방인으로 전락시켰다. 그들은 강제로 노예로 팔려갔고, 마녀 사냥을 통해 사형 당했으며, 강제 추방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는 로마 공동체를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수십만 명을 몰살시켰으며,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로마니인의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약 9만 명의 로마니 여성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게 했다. 아직까지도 그들은 로마라는 민족명 대신 ‘집시’라는 비하적인 용어로 불리기도 하며 그들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폴란드 국적으로 살고 있는 작가 또한 실제로 자국에서는 사회적 타자에 속한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에게는 ‘로마니 출신 최초로 베네치아비엔날레의 국가관을 대표한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이러한 이중적 패러다임 안에서 혼란스런 청년기를 보낸 작가는 로마 커뮤니티에 드리워진 이중적 잣대를 걷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현대미술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사회운동과 작품활동을 동일시 하는 마르가-타스는 실천적 미술을 하는 작가이다. 로마 커뮤니티에 대한 편견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작가의 액티비즘은 요란한 외침이 아니라 미학적인 감동을 통한 마음의 동요이다. 작가는 입체적인 회화를 통해 그 위에 자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를 위해 작가가 선택한 미디엄은 구제옷이다. 제2의 피부라고도 불리는 옷은 작게는 한 개인의 개성을 크게는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녀의 친족과 커뮤니티가 입었던 옷은 로마니인의 정체성이 깃든 아우라를 내포하며 작품 화면에서 관념적인 입체로 작용한다. 실제로 조각이라는 공간적 예술을 통해 미술에 입문한 작가에게 공간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구제옷에서 오려진 다양한 패턴은 작가의 작품 안에서 바느질을 통해 이어 붙여지며 아름다운 화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평면 미술을 조각적 관념으로 접근했던 르네상스의 대가 미켈란젤로의 회화를 연상 시키는 듯 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세르빌에 거주하는 로마니 여성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수르바란의 종교화가 걸렸던 웅장한 바로크 프레임 안에 대신 자리한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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