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러 문화공간에서 진행된 퍼포마비엔날레(performa-arts.org, 2023.11.1-19)는 국제 공연예술 분야의 선구적인 행사이다.

여러 커미션을 통해 라이브 퍼포먼스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계속 발견하고 실험해 왔으며, 이를 통해 공연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생성하는 장으로 기능해 왔다. 먼저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2004년 ‘벽이 없는 파빌리온’을 표명하며 시작된 퍼포마는 다양한 국가의 사회적, 지리적,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동시에 뉴욕의 신진 및 원로 예술가의 실험적인 공연 작업을 선보여 왔다. 2년간의 광범위한 연구를 거쳐, 큐레이터, 역사가, 예술가, 교육자를 포함한 여러 파트너와 협력하여 활기찬 예술 실천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간 호주,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폴란드, 남아프리카, 스웨덴, 대만 파빌리온과의 협업을 진행해 왔으며, 올해 행사는 핀란드 파빌리온과의 협업으로 노라 투라토(Nora TURATO), 줄리앙 크뤼제(Julien CREUZET), 테오 알라-루오나(Teo ALA-RUONA) 등의 작가가 참여한다.

2023 퍼포마는 한국 작가의 참여도 돋보인다. 필자가 방문한 기간 동안 김아영, 제인 진 카이젠은 런치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과 점심식사를 하며 자신의 작업세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며, 양혜규(1971- )는 퍼포마 커미션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 The Malady of Death>(2023)을 선보였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The Malady of Death』(1982)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양혜규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시한부인 한 남자와, 그에게서 돈을 받고 ‘밤들’을 함께 보내기로 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어둠 속에서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배우 노라 드메즈웨니의 독백과 함께, 극장을 가득 메우는 사운드, 무대 뒤와 관객석 천장에 각각 프로젝션되는 스크린, 어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조명 효과는 배우가 이끌어가는 내러티브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며,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시켜 나갔다. 죽음과 사랑, 현전과 부재를 그려낸 이 작업은 그 형식에 있어서도 ‘전시되는 여배우’와 작가가 주로 사용해 온 오브제(선풍기, 무빙 라이트 등)의 구성을 통해 연극과 설치미술 사이에서 그 만의 새로운 장르를 구현해냈다.

이튿날 뉴욕 기반의 퍼포먼스 작가 알렉사 웨스트(Alexa WEST, 1991- )의 공연이 펼쳐졌다. 무용과 조각을 공부하고, 두 분야에 걸쳐 물질이 지닌 감각을 다루는 공연을 만들어 온 그녀는 이번 퍼포마에서 <Occasion, Occasion, Occasion>(2023)을 성공적으로 상연했다. 각각 고고 댄서와 발레 댄서, 서버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5인의 무용수가 등장하여, 공연장 중심에 놓인 여러 개의 테이블 구조를 다양하게 활용해 계속해서 여러 상황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테이블 하단에 달린 바에 간신히 매달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고군분투 하는 무용수와, 이와 무관하게 테이블 위에서 신나게 고고 댄스를 추는 무용수가 함께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위계 구조를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공연장 양 벽면을 가득 채운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에서는 기계음과 멜로디, 라디오 방송이 교차적으로 흘러나오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시대적, 정치적 내러티브를 더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테이블이라는 가구이자 조형물을 ‘모임(gathering)’의 사회적 구조와 연결시켜 다루면서, 동시에 전통 발레와 현대 무용, 대중적인 춤이 뒤섞여 여러 장르를 뛰어넘는 하나의 무대를 완성시켰다.

이번 행사가 오늘날 퍼포먼스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서 절충적이고 실험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생성하고 토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김정현(1988- )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졸업. 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두산아트센터 해외 레지던시 선정. 현 The Association of Art Museum Curators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