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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연민으로 작품을 보다

구정원

존 아캄프라, 현기증의 바다, 2015, Courtesy Smoking Dogs Films and Lisson Gallery. Photo ©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 David Parry. © Smoking Dogs Films


2015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초연된 존 아캄프라(Sir John AKOMFRAH, 1957- )의 영상 〈현기증의 바다 Vertigo Sea〉를 런던 영국왕립예술원에서 다시 조우했다. 비엔날레에서 ‘미래’의 맥락으로 보여지고 왕립예술원 《얽힌 과거 Entangled Past, 1768-Now: Art, Colonialism and Change》전에선 ‘과거’의 맥락에서 재조명되었으나, 서구식민역사에 뿌리를 둔 점은 결을 같이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대영제국으로 도약하던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영국 사회가 겪어온 식민 이주 역사를 터너에서 아캄프라까지 담아낸 이 전시는 디아스포라라는 넓은 범주가 무색할 정도로 흑인과 백인의 정치적 헤게모니에 무게가 실려 있다. 블랙디아스포라는 인식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과거에서 동시대 미술로 올수록 점차 인식의 주체로 전환되었다. 영국 제국주의에 뿌리를 둔 왕립예술원은 보수적인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기에 그간 예술원 문턱을 넘은 타자는 ‘최초의 흑인 작가’, 최초의 여성작가’, 혹은 ‘최초의 흑인여성작가’ 등 미디어를 통해 요란하게 회자되었다. 이번 전시가 받은 주목 또한 이러한 정치적 기후를 반영한다.

식민과 이주라는 주제는 포스트모던 이후 수없이 다루어져왔으나 범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은 흑인인권운동은 서구 미술기관들로 하여금 블랙디아스포라 예술을 재조명하고 식민과 이주라는 명제를 재소환하게 했다. 기존 디아스포라 전시가 간과한 지점을 섬세하게 짚어내 차별화되는 이번 왕립예술원 전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각각의 미술작품이 내포하는 고유의 미와 감성 또한 섬세히 드러냄으로써 메타모던(Metamodern)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 《얽힌 과거》전 기획자 3인은 예술을 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카르시안(Cartesian)적 사고가 아닌, 하이데거가 말하는 소르게(Sorge) 즉 돌봄의 대상으로 인지하는데, 이것은 라틴어 ‘Cura’를 어원으로 하는 ‘큐레이터Curator’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덕목이자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아캄프라의 작품 〈현기증의 바다〉가 위치한  ‘교차하는 해역-물의 숭고 Crossing Waters-Aquatic Sublime’ 섹션에서 더 돋보인다.

〈현기증의 바다〉는 터너의 거친 바다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를 사이에 두고 프랭크 보울링(Frank BO-WLING, 1934- )의 추상회화 〈Middle Passage〉(1970)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보울링의 회화는 관객에게 마치 캐리비언 해의 황금 물결 위에 있는 듯한 압도적인 벅참을 선사하지만 그 물결 아래로 비치는 붉은 빛은 노예제도 아래에서 희생된 선조의 아픔을 드러낸다. 반면, 아캄프라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숭고의 의미는 정형화된 미의 개념에 도전장을 냈던 18세기 풍경화에 내포된 ‘숭고’의 개념과 더욱 닿아 있다. ‘매혹적인 공포’라는 별칭을 가진 ‘숭고(Sublime)’는 인간을 안전한 감정의 울타리로부터 끌어낸다. 당시, 푸생의 회화처럼 조화롭고 안정적인 규율에 의해 그려진 아름다움에 익숙하던 이들에게 문명을 단숨에 집어 삼키는 성난 바다의 모습은 천재지변을 경험하는 듯한 아찔함을 선사하지만 이내 그 장관에 감정적으로 압도된다. 아캄프라는 이러한 지적 유희를 선사했던 성난 바다에서 흑인 노예가 사고 팔리고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비판한다. 더불어 칸트가 강조한 숭고의 또 다른 의미인 ‘인간의 도덕성’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무의미했음을 보여준다. 아캄프라는 이렇게 지극히 엘리트적이고 백인우월적인 미학적 개념을 역이용하여 식민 역사를 비판한다. 작품에서 해양 생태계와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은 지배자와 지배당하는 자와 비유되며 오버랩 되는데 화면이 자아내는 공포스러운 아름다움은 카타르시스적 반전을 선사한다.

이 전시로 나는 작품을 연민(Compassion)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메를로퐁티가 시사하는 ‘능동적인 지각 행위(Active doing)’를 통해 예술을 오롯이 예술로 공감하며 나만의 진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베네치아비엔날레 영국관에서 마주할 아캄프라의 신작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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