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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빛으로 공간을 빚는 작가, 다니엘 뷔렌

심은록

“빛의 궁전”, “빛의 비”, “색채의 목욕”,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예술가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1938- )의 전시 모뉴멘타(Monumenta 2012 Daniel Buren - Excen trique(s) travail in situ, 5.10-6.21, Grand Palais, nef)를 알리는 대중매체의 표현들이다.



프랑스는 매년 세계적인 예술가 한 명을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모뉴멘타에 초대한다. 안젤름 키퍼, 리처드 세라,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아니쉬 카푸어에 이어 올해는 다니엘 뷔렌이 초대됐다. 그랑팔레를 가득 채운 377개의 투명한 PVC 원반은 흑백으로 된 1300여 개의 얇은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노란색, 주홍색, 초록색, 푸른색 원반들은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내고 있다. 그랑팔레의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원반을 통과하면서 색채를 머금고 바닥에 투사되어 진한 원색의 안료를 그대로 쏟아버린 듯하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잠시 숨으면, 전시장의 바닥은 서로 다른 수채화 안료가 배어든 듯, 혹은 커다란 붓이 스쳐가며 물감을 번지게 한 듯 그렇게 촉촉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파리 봄 빛의 수다스런 변덕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 안료를 듬뿍 머금은 빛으로 공간을 빚는 작가, 다니엘 뷔렌을 만났다. ‘온화한 뷔렌’이라는 별명대로 그는 다정다감하고 친절했다.


Q. 빛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어떻게 이 작품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A. 그랑팔레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모뉴멘타 제의를 받자마자 이곳의 거대한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환상적인 빛을 생각했다. 물론 파리의 하늘은 빛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비도 지나간다. 매 순간 변하는 하늘에 따라 나의 작품도 계속 변화된다. 관람객들은 산책(관람)하는 동안 이 변화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


Q. 지난해 모뉴멘타에서 아니쉬 카푸어는 그의 “작품을 보며 관람객들이 ‘우와!’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예술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인 ‘숭고’의 감정을 함께 공감하기를 원한 것 같다. 당신은 관람객들이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

A. 내가 최선을 다해 작품을 완성한 후, 그 나머지는 관람객들의 몫이다. 작가인 내가 작품을 어떻게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들의 감성을 일정방향으로 유도하고 제한시키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단지 이 작품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마티에르와 색깔을 사용했고, 왜 이 크기로 했는지 등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해석은 오로지 관람객들에게 달려있다. 


Q. 서양에서 ‘공(空, vide)’이나 ‘무(無, néant)’라는 개념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당신의 ‘공’ 개념은 그렇지 않다. 동양의 정신에 영향을 받았는가?

A. 나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의 공간사용 방식에 특별한 매력을 느껴왔다. 그 가운데 일본이 가장 극적인 모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생활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인지 일본인들의 공간활용은 놀랍다. 일본에서는 협소한 공간에도 작은 마당이나 정원을 만들어 ‘공’을 향유한다. 이로 인해 실제적 공간은 더 줄어들지만, 사람들은 ‘공’을 향유하면서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로움을 느낀다. 이처럼, 작아 보이지만 거대함을 느끼게 하는 ‘정원’, ‘선(禪, zen)’, ‘공’ 등에 나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충만한 공(le vide plein)’은 한국 철학의 음양 이론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나에게 있어서도 ‘공’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도 이러한 ‘공’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재현하느냐가 나의 주관심사였다. 


Q. 당신 작품을 포함해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누군가 피카소에게 그의 작품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 어떻게 중국인과 대화할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술과 대화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는 시간을 들여서 예술을 배워야 한다.



심은록(1962- )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철학 및 인문과학 박사. 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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