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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언젠가는 가고 싶은 섬”

정재왈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던 때, 두루두루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취재했지만 변죽도 올리지 못한 분야가 있다. 종교와 미술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개 두 취재처는 고참 선배들의 ‘나와바리’였다. 고매한 신부님과 스님, 목사님들이나 지체 높으신 화랑가의 어르신들과 ‘맞상대’를 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관습법 같은 것 때문에 웬만한 중견기자라도 선뜻 해보겠다는 소릴 못했다. 요즘은 변해도 “너∼무 변해” 경력이 많지 않은 기자들도 종횡무진 잘 하는 것 같다. 그런 문화와 관습에 젖어 있다 언론계를 떠나, 소위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밥을 먹고 사는 요즘 그걸 못해본 아쉬움이 크다. 종교는 그렇다 쳐도 미술은 떼를 써서라도 해볼걸 그랬다 싶은 일말의 후회, 그런 게 있다. 하여, 나는 그 현장에서라도 기회가 나면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리라 했는데, 마침 내 일터인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실천할 길을 찾았다. 


미술에 대한 두가지 사업지난해 부임 이후 나름 정평이 나있는 우리 홈페이지에 ‘더아트로(www.theartro.kr)’ 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미술 관련 정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 현대미술에 관한 다양한 정보, 이를테면 미술계 담론과 트렌드라든가 전시 활동, 땀냄새 나는 사람 이야기 등을 따끈따끈하게 온라인망을 통해 국내외로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플랫폼이다. 외국인 접속자를 배려해 영문 서비스도 준비했다. 이 아트로가 탈선 않고 정상궤도에 서면서, 올해는 다른 분야로도 욕심을 냈다. 어느 분야든 ‘사람’이 최고인 법이다. 미술 분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큐레이터들에게 견문을 확장할 사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시각예술 글로벌 기획인력 육성사업’이다. 나름 우리의 원대한 꿈이 열매를 맺도록 돕기 위해 몇 년은 지속될 사업이다. 


우리가 하는 두 가지 사업을 보고 눈치 빠른 독자는 그 성격을 간파했을 것 같다. 이런 사업들은 미술 창작자를 위한 직접지원이라기보다 현장의 자생력을 키우고자 돕는 ‘매개사업’이다. 이를 예술경영 활동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일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해 아쉬웠던 ‘미술’에 다가가는 내 나름의 방식이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그곳을 나는 ‘섬’이라 부르고 싶다. 사실 장르로 치면 나는 연극과 무용 등 공연예술에서 커리어를 키웠는데, 매회 공연이 끝나면 속절없이 소멸하는 공연예술의 무상(無常)함을 연민한 탓에 오랜 동안 그곳을 서성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심 미술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어느 작품에 켜켜이 역사가 쌓이면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미술이 한없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낳으면서 위안을 준다. 그건 공연예술과 비교할 수 없는 미술만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미술은 가고 싶은 섬

나는 가끔 일상에서도 이런 걸 경험하는데, 그럴 땐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그 이야기 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 집 거실에 故 김점선의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5년 전 2004년 대학로 정미소갤러리 전시(1.27-2.29) 때 구입했다. 빨강과 노랑, 보라, 진녹색이 어우러진 이 그림의 색감은 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김점선 작품


마치 포도 덩굴 같은 그늘 아래로 노란색 부리와 다리를 가진 흰색 오리(그런 것 같다) 두 마리가 어딘가로 달려간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내 품으로 막 달려드는 영락없는 우리집 두 아이들 같다. 내 또래보다 한참 늦게 아이가 생겨 아직도 어린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땐 어찌 키우나 한숨도 나는데, 그 아이들이 오버랩 된 그림을 보면 힘이 솟는다. 집사람은 모르겠지만, 故 김점선의 그 그림은 나의 신비한 활력소인 셈이다. 미술과 관련한 우리 기관의 사업도 사업이지만, 나는 이와 같은 소고(遡考)한 이야기의 보고인 ‘미술이라는 이름의 섬’을 찾아 언젠가는 여장(旅裝)을 꾸릴 것이다.



정재왈(1964- ) 고려대 문화콘텐츠 박사. 제16회 관훈언론상 기획취재부문(1999) 수상.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LG아트센터 운영국장 역임. 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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