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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이우환의 ‘강돌’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

배기동

나는 돌박사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돌도끼박사이다. 왜냐하면 내가 전공하는 것이 선사시대의 돌도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이라고 하면 귀가 번쩍 뜨이는데 최근에 돌에 대해서 새로운 개념을 하나 가지는 계기가 이우환 선생의 구겐하임 전시이다. 이 선생은 우리나라의 강변에서 볼 수 있는 모가 죽은 큼직한 강돌을 선택하여 미술관 공간에 전시를 하였다. 나는 이 전시를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전시의 상황을 넌지시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전시 이후에 신문에 큼직하게 이 선생이 ‘왜 돌을 전시하는가?’ 그리고 ‘그 돌을 구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전시를 보지 않고 이 글, ‘내 마음속 미술’을 쓴다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지만 그의 강돌전시가 주는 메시지는 나에게도 강렬하게 와 닿은 점이 있고 나의 마음 속에 그 진한 충격이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내 생각컨대 그러한 메시지가 바로 이 선생 미술의 마력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일까?


이우환 선생은 나에게 가장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사실 그 분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그 때는 그의 선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그려도 그림이 되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였던 시절이니 이 글을 보는 미술전문가들은 나의 허술한 속살에 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의 10여 년 전에 일본 후쿠오카의 미술관에 들렀을 때 또 한 번 내 머리를 쳤던 적이 있다. 카페테리아 벽의 높은 부분에 아마도 창문같이 그린 것이 있는데 이 선생의 작품이고 그 창문을 그리느라고 여러 날을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저 ‘아!….’라고 탄성을 내뿜었던 적이 있다. 화려한 색상이 있는 것도 아니오 입체적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의미가 담긴 것도 아닌데 바로 그 미술관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또한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는 것을 보고 내심 나의 무지를 심하게 반성하였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선생의 퍼포먼스적인 미술행위와 조형으로서의 미술이 융합되어 미술 그 이상의 새로운 영역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그의 마술적인 지혜와 손이 놀라운 것이다.


<Relatum-expansion place, 2008/11>

Steel and stones. Two plates, 25.4 x 221 x 1cm each; two stones, 35cm and 45cm high. Courtesy The Pace Gallery, New York, and Blum &Poe, Los Angeles. Installation view: Lee Ufan: Marking Infinity,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June 24-September 28, 2011. Photo: David Heald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그런데 구겐하임의 강돌전시는 또 다르게 나를 흔든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구석기유적에서 똑같은 강돌을 발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강돌전시는 나에게 과거를 회상하도록 만들었던 것이고 강렬하게 남게 된 것이다. 전곡선사유적의 강돌은 직경이 70cm가 넘는 아주 큰 것인데, 보통 차돌이라고 하는 연한 갈색의 불규칙한 모양의 강돌이다. 그런데 구석기유적에서 돌들은 대체로 석기를 제작하기 위해서 가져오게 되고 깨어져 파편으로 된 것이 대부분인데 이 강돌은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그 정도 큰 돌이 있는 강은 아마도 상당히 멀리 있었을 것이고 그 자리로 가지고 오기 위해서는 적어도 장정 여러 명이 여러 시간 옮겨 왔을 것이다.


문제는 석기제작 용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강돌이 유적지에 있게 된 연유를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고고학자들은 그 용도를 모르면 ‘의례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인간성 즉 감성표현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선사인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석기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이 강돌을 자신들의 홈베이스에 가져다가 감상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상당한 시간 동안은 돌을 보고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하였을 것이고 즐기기도 하였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든 전시가 바로 이우환 선생의 구겐하임 강돌전시이다. 나에게는 이 선생의 그 전시 메시지가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남게 된 것이다.



배기동(1952- )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석사, UC Berkeley 인류학 박사. 박물관협회장ㆍ국립전통문화대학총장 역임. 저서로『고고학 발굴과 연구 (2011) 주류성』외 30여 권. 현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 이사장, 전곡선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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