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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전혁림의 <만다라>

신달자

전혁림, <만다라>


전혁림의 바다는 그의 생명이다. 전혁림의 통영은 그의 생명이다. 전혁림의 ‘청색’은 그의 생명이다. 그의 그림에는 하늘이 펄럭이고 바다가 철썩거리고 인간의 노여움과 인간의 미소가, 인간의 절망과 희망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부딪혀 쩔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렇다. 추상이 무엇인가 의문을 가지고 다시 의문을 가지면서 결국 전혁림에 와서 그 추상의 개념이 완성된다. 모르는 것도 다 그 그림 속에 있다. 다 알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을 즐기며 그 그림 속에서 살다보면 그 그림 속에 뒹굴고 완전히 누워버리면 추상이라는 개념이 내 가슴 안으로 흘러들어 온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들어오면 사랑하게 되고 각자 그 흘러들어옴을 느끼면 그림은 되는 것이리라. 그 그림과 떨어져 살아가더라도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닌가. 피카소가, 샤갈이, 뭉크가 함께 살아서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가. 예술은 ‘영원’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면 인류가 사라져도 남는 것이다. 그 힘은 인간이 빈틈 많고 부족하고 못난 정신의 허기를 모자라지 않게 채워주는 영원양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먹거리와 예술을 같은 조건에 두는가. 인간에게는 아무리 먹어도 허기지는 정서적 허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시, 좋아하는 그림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혁림의 청색을 좋아한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푸르청청하다’, ‘파랗다’, ‘파르스름하다’, ‘검푸르다’, ‘검어 틱틱 푸르다’, ‘하늘 바다 한 몸 청색’, ‘엷은 청아 빛 스미는 청색’, ‘맑은 청색’, ‘깊은 청청색’이 끝없는 청색이 모두 전혁림의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청색이다. 특히 인간 태초에서 종말까지 아니 그 태초 전의 그림자와 종말 이후의 어스름 그림자까지 총 집중되어있는 것이 전혁림의 <만다라>다. 그 그림 앞에 서면 기가 딱 막힌다. 열 번을 서도 기가 콱 막힌다. 백 번을 서 보라.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그리고 내버려둔다. 마음으로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뒤로 물러선다. 그때 서서히 그 청색이 들어오고 모르는 빛이 눈부시게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는 이 만다라를 두고 시를 쓴 적이 있다.


삼천만 년을 찾아 흐르다 끝내 놓쳐 버린 것 여기 있네

구천만 년을 찾다 되돌아간 것 여기 있네


우주의 눈으로 영원의 눈으로

땅의 눈으로 하늘의 눈으로

바다의 눈으로 산의 눈으로

더듬고 할퀴고 찢기고 엉긴 피범벅으로

사랑한 우주의 실핏줄도 여기 있네


전혁림, <만다라>, 작품일부


만다라의 첫 부분이지만 아직도 그 그림의 첫 단계도 오르지 못한 시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이렇게 첫 단계를 올라가는 일이다. 어떻게 만다라를 단숨에 오르겠는가. 욕심을 버릴 일이다. 높은 산은 수천 번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아끼며 아끼며 조금씩 오르려 한다. 그렇다.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것이 삶에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전혁림 화백은 2015년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다. 이 <만다라>를 처음 본 이영미술관에서 행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 그림을 받아낸 김이환 신영숙 관장님은 또 하나의 작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림 앞에서 언제나 몸을 조아리고 겸허한 분들이다. 백년 전 전혁림이 없던 하늘과 바다가, 통영이 저런 청색이 있었던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구? 전혁림이 온다는 것을 저 하늘은 바다는 알고 있었으며 청색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도 바다와 하늘과 청색은 존재한다. 왜? 그가 다녀간 세상이 아닌가. 청색을 청색으로 만드신 분 아닌가.



신달자(1943- ) 숙명여대 국어국문학 학사, 동 대학원 석사, 박사.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회 위원, 평택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93), 제24회 거창국제연극제 홍보대사(2012) 등 역임. 대한민국 문학상(1989), 한국시인협회상(2004), 제6회 영랑시문학상 본상(2008), 은관문화훈장(201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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