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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나의 영원한 친구, 밥 아저씨

김세한

어느 날인가 EBS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그림교육 프로그램의 성우를 맡아달라는 것이다. 아마 비교적 부드러운 내 목소리 빛깔이 그림을 다루는 사람과 어울린다 싶어 연락이 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운명이었다. 밥 로스를 만나게 된 것은.  


밥 로스: <The Joy of Painting> 캡쳐화면


밥 로스(Robert Norman Ross, 1942-95)는 미국인 화가로 공군에 20여 년간 복무한 이후 밥로스 교실이라는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에서 <그림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한국, 영국, 독일, 일본 등으로 수출되어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다. 전통유화가 아닌 마르지 않은 상태의 캔버스에 물감을 덧칠하고 붓이나 나이프로 우연성을 가미해 빠르게 그림을 완성하는 기법(Wet on wet)을 즐겨 활용했다. 방송출연료는 기부했다고 알려진다. <그림을 그립시다>로 번역된 프로그램을 일 년 반쯤 진행하면서 제작하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니 그림을 그리는데 달인이 된 것이 아니라 더빙하는데 능숙해져서 가령 30분짜리 프로그램 세 편을 녹화한다 해도 시작부터 끝까지 한 시간 반 동안 단 한번도 NG없이 계속하게 됐다. 엔지니어와 담당PD가 화장실을 가지 못해 당황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맞다. 또 방송이 나가는 동안 미술용품들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에게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애드리브를 구수하게 잘 구사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한 그루면 외롭겠죠? 자, 이쪽에도 몇 그루 더… 라운드붓을 이용해서 다크 시에나와 반 다이크 브라운으로 나무의 형태를 잡아줍니다. 그리고 나이프로 티타늄 화이트를 살짝…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라디오 드라마를 즐겨 들었는데요, 한번은 드라마를 듣다가 내용이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제 남동생이 그 사실을 학교에 가서 소문을 냈지 뭡니까? 창피하게. 어른이 된 지금 동생을 좀 혼내주려 해도 현직 경찰관이라서 그게 좀… 어? 벌써 나무가 완성됐네요. 어때요? 참 쉽죠?” 이런 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좋았는데 어느 날 악성 림프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세상 떠나기 전에 둘이 한 번 만났어야 하는데.


실제로 밥 로스를 따라서 그려 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하는데 “어때요? 참 쉽죠?” 이 멘트 덕분에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미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간혹 일부 사람들로부터 그의 그림은 깊은 철학이 없는, 이발소 같은 곳에 걸어 놓을 그림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과연 그의 그림에 깊은 철학이 있는지 없는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다가가기 어려운 미술을 TV 화면으로나마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 그를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부른다. “나의 영원한 친구, 밥 아저씨”


아직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작가나 그림이 있냐고 물으면, 음악에 대해 지식이 없어도 모차르트보다 베토벤이 더 좋다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중섭의 <흰 소>나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이야기한다. 사실 누가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고 어느 곳에서 전시를 하는지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어 1, 2년에 한 차례 미술전시를 보러 가는데 귀중한 미술전문 정보지에 서툰 글을 싣게 되어 영광이다. 참, 인터넷으로 ‘밥 로스 차범근 대우증권’을 검색해 보면, KDB 대우증권 CF가 나오는데 저질스러운 광고가 아닌 재미있는 CF에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 지금도 그와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김세한(1946- ) 동아방송 입사(1970), 언론통폐합 이후 KBS 12기 성우로 활동(1980). <그림을 그립시다>(밥 로스 역, EBS), <암흑가의 두 사람>(지노 역: 알랭 들롱 분, KBS),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애슐리 윌크스 역, KBS). <사운드 오브 뮤직>(트랩 대령 역, SBS) 등 참여. 라디오 연기대상 대상 수상(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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