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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그림 속에 숨은 화가의 그리움 찾기

이근수

그림을 그리움이라 풀어써본다. 화가의 그리움이 형상으로 녹아든 것이 그림이라는 생각에서다. 펼쳐진 그림을 바라보면서 화가가 느꼈던 그리움을 발견하고는 기껍게 그에 동참한다. ‘내 마음 속 미술’은 그림 속에 숨겨진 화가의 그리움 찾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삶과 예술이 하나 되고 화가의 깊은 그리움이 저변에 깔린 미술작품에서 독자로서의 나는 삶을 다시금 운전시켜갈 동력을 얻는다. 미술의 가치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무용과 달리 미술에 관한 글은 자주 쓰는 편이 아니다. 뉴욕에 체류할 때 만났던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작가론 성격의 글을 한두 번 써본 것이 고작이라 할 수 있다. 재미 화가인 천세련과 안형남에 관한 것이다.


천세련, <Milky Way 2015>, 2012, 혼합재료, 가죽.

  

천세련은 1981년에 도미한 후 뉴욕대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다. 화가인 동시에 그녀는 오래된 차인(茶人)이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차를 우려 마신 후 남은 찻잎이 그녀에게는 소중한 작업 재료다. 장구에서 떼어낸 가죽판은 캔버스가 된다. 젖은 찻잎을 위에 얹으면 잎이 말라가며 가죽 판에 우연한 흔적을 남기고 마른 찻잎 위에 유화물감을 덧입히면 입체적인 굴곡이 생겨난다. 찻잎 대신 조개껍데기와 모래, 나무 조각 등 천연재료들이 화판에 붙여지기도 하고 크고 작은 가죽판 대신 두꺼운 한지나 동그란 CD판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림마다 촘촘히 찍혀지는 무수한 점과 선, 이들로 구성되는 원과 네모난 형상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작품이면서 상하좌우로 연결시켜갈 때 무수히 많은 형상의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없다면 예술은 다만 고통스러운 작업일 뿐이겠지요. 그림은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림이란 그에게 일상이 된 차 생활과 예술세계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창조되는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인 것 같다. 


안형남, <Blood Line 2>, 2012, alminium, board, neon, oil, 혼합재료, 244 × 244 cm.


안형남은 1971년에 도미한 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시카고와 시애틀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부터 뉴욕으로 옮겨온 키네틱 아티스트다. 각종 금속과 알루미늄, 플라스틱, 유리재료 등이 소재가 되고 소리, 빛, 동력학, 전자공학 등 과학적 기술이 재료에 접목된다. 과학과 인간과 예술, 이 세 가지를 연결해주는 것이 아티스트로서 그의 목적이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원로목사로 은퇴한 후 작고하기까지 매일 아침 단정한 넥타이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글을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16세 때 떠나온 고국의 기억이 작품 속에 깔린 그리움의 원천일 것이다. 그가 석양이나 철새 등 자연적 현상으로부터 자주 영감을 얻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ed Love)> 시리즈로 발표된 그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그리움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예술은 거짓말, 유용하며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말과 그리움이 현실적이지 않은 거짓이라도 그것은 충분히 내면의 또 다른 아름다움의 표현이고 이러한 가치가 그의 창조적 원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근수(1947- ) 현 경희대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경영학박사. 한국회계학회장 역임. 대통령표창(2004) 수상, 옥조근정훈장(2012). 『푸른 화두를 마시다』(2008), 무용평론집 『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2011), 산문집 『그리움의 차도』(2015) 등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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