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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진실됨, 그리고 아름다움

하지은

딸아이가 그린 우리집 강아지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 살림을 도와주고 계시는 고모 할머니를 위해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고모 할머니는 그 그림을 싱크대에 붙여 놓으셨다. 그림을 싱크대에 붙여 놓으면 물이 튀어서 그림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그림을 싱크대에서 떼서 다른 곳에 보관했다. 그러자 고모 할머니가 그림을 찾으셨다. 싱크대에 그 그림을 붙이고 일을 하면 힘들 때 기운이 난다고 하셨다. 딸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무리 그리기를 좋아해도 초등학교를 막 들어간 아이의 그림이 뭐 그리 대단할 리 없다. 그렇지만 자기가 기분이 좋고 행복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나는 것일 테다. 그런 딸은 작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강아지를 동생이라면서 매우 예뻐하고 있다. 당연히 강아지 그림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그릴 때 행복감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딸이 그린 강아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목정 방의걸, <여명 Ⅱ>


그린 이의 정서가 그림에 배어 나오는 것은 아이들의 그림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우리 시아버지는 미대 교수로 재직하셨던 한국화가이시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아버지는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셨는데 실력과 비교하면 많이 알려지신 편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좀 나서서라도 아버님 그림을 알리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그림은 당신이 평생 울고 웃고 한 놀이라고 하시면서 그만큼 재미있게 놀았으면 됐지 뭘 그렇게 이름을 알리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아버님 그림 속에는 어떤 울음과 어떤 웃음이 숨겨져 있을까? 울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받쳐서 통곡하는 울음, 꾹 참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인고의 울음, 안타까움에 흐느끼는 울음…. 웃음도 마찬가지이다. 신이 나서 깔깔거리는 웃음, 흐뭇함에 번지듯이 흘러나오는 미소, 통쾌함과 함께 분출되는 환희의 웃음…. 이 모든 울음과 웃음을 하나로 묶어내면 가슴 먹먹한 삶과 자연의 이야기가 토할 듯이 나올 것이다. 마치 목정 방의걸의 <여명 Ⅱ>처럼.


목정 방의걸, <격(格)>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보다는 조용히 고개 한번 끄덕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연을 전달할 때가 있다. 아버님은 이런 침묵의 끄덕임을 여백으로 표현하신 것 같다. 여백으로 표현된 침묵의 끄덕임은 작가의 표현과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만난다는 면에서 한국화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난 그래서 아버님 그림 중에 여백을 살린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그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작품을 그린 이의 감정이 진실하게 배어 나와야 보는 사람도 감동할 수 있다. 그런 진실함이 있다면 어린아이의 그림, 전문가의 작품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다.



하지은(1972- ) 와세다대 석사과정(한일 관계·한일 문화사), 공채 MBC 아나운서 입사(1994), MBC TV 뉴스 투데이, 저녁뉴스, 마감뉴스 앵커, TV속 TV 등 진행. 현 MBC 아나운서국 제 2부장, 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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