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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동화로 만난 미술

황문찬

루벤스, <성모승천>, 1626, Oil on panel, 490 × 325 cm, O.-L. Vrouwekathedraal, Antwerp.


인생이라 불릴 시간 속에서, 맨 처음 마주친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당연하다.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기억하게 되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질문할 때 곤궁한 답변은 삶을 쓸쓸하게 한다. 어떤 그림, 어느 작가를 좋아하는지, 혹 삶의 어느 한순간 마주친 감동이 늘 영혼 가운데 따스한 불빛을 드리우는 게, 누구의 무슨 그림인지를 간혹 묻기도 하고, 답변하게도 된다. 대단한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무슨 지식이 쌓인 이해를 하는 것도 아니더라도 삶의 곳곳에서 예술은 얼굴을 불쑥 내민다. 눈 뜨고 보는 것이 그림이요, 눈 감으며 떠올리는 이미지가 그림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은 많이 얘기하는 것이지만, 마음 속의 풍경으로 남아있는 그림이 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 『플란다스의 개』는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어서 두루 알려진 얘기겠다. 마침 겨울이니 몇 말씀 보탠다면, 추운 겨울 숨진 네로와 네로의 플란다스를 추억한다. 요즘같이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도 예전 추위의 겨울이 아니어서 혹한의 겨울을 예상하면서 그 피할 수 없었던 가난과 추위로 죽어가는 네로와 플란다스는 더욱 애처롭다. 비극으로서 예술이 감동을 낳는다는 것은 잔인하기도 하다. 어느 만화에서는 함박눈이 내려 쌓이는 겨울 플랑드르를 그리기도 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을 묘사함으로 겨울 추위를 그려낸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당시의 가난과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거나 교묘하게, 또는 막무가내 후안무치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의 어두운 뒷모습 저편에 네로가 보고 싶었던 루벤스와 루벤스의 그림이 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 때문에 지금껏 어디 어디를 다니며 그림을 보게 될 땐 꼭 루벤스의 그림을 찾아보게 되기도 한다. 루벤스의 생애처럼 네로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편안했었다면 좋았을 거란 마음은 늘 남아있다. 루벤스의 그림을 그저 보았을 뿐이지만, 그저 보는 루벤스의 그림은 네로의 이미지와 더불어 떠오른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짐>, 1612-14, Oil on panel, 420.5×320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그림은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멈춰 서서 보게 하는 삶은 전진과 진격의 시대에선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의 일상을, 일상 저쪽의 이미지들을 보다 진지하고 자세히 멈추어 보게 한다. 멈추어 보는 중,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게 하며, 깨닫게 하고 답변을 향한 걸음을 옮기게 한다. 


어린 마음으로 읽었던 동화는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을 더불어 찾아보게 하고, 네로가 자라서 화가가 되었다면 남겼을 그림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네로가 그렸을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 그림에서 네로는 뭘 말하려 했을까?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이 그림으로 들려주는 의미를 들을 수 있다면 또 무슨 감동으로 이끌어주었을 것인가.



 - 황문찬(1954- ) 감리교신학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숭실대 통일정책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미국 글렌포드대 목회학 박사 취득. 前 서울 마포 성광교회, 잠실벧엘교회, 서울교회 등 담임목사. 현 세검정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실행위원, 감리교 에큐메니칼위원회 위원장. 배재대, 남서울대 출강. 『하루의 시작』, 『남당집』, 『지금 사랑하고 계시나요』(2010)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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