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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일상에 스미는 예술을 허하라!

박계배

작년, 예술인들이 소상공인 팽이대회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국제적 행사란다. 국제적인 팽이시합이라니 대체 무엇일까. 문래동 소상공인들과 예술인들은 지름 2cm의 국제 공인규격에 맞춰 팽이를 제작했다고 한다. 어떤 팽이가 더 오래 돌 수 있을지를 디자인하고 공정하며, 하중을 어떻게 맞춰야 상대 팽이를 밀어낼 수 있는 지를 예술인들과 소상공인들이 함께 고민하였다는 소식은 잠시나마 어릴 시절 빙판 위에서 동무들과 팽이 치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다던 문래동이었지만, 이 지역에서 6년간 제대로 ‘협업’임을 보여주는 건 이 작은 ‘팽이’뿐이라는 평가를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들었을 때, 우리 삶 속 예술은 과연 어떻게 와 닿고 가치가 발현하는 지를 되묻게 했다.


최두수·송호철, <이슬팽이>, 2015, 문래동 소상공인들과의 협업으로 만든 제품.


우리사회 ‘공공’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술지원 사업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시각예술 분야에서 ‘공동체 기반 예술활동’은 수잔 레이시가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문래동 소상공인협의회를 포함 총 190개 기업·기관에 498명의 예술인을 파견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동기는 이러한 공공예술의 경향에서 착안하였음을 고백한다. 공동체의 이슈를 감지하고, 예술적인 긴장감을 유지한 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관계망 속에서 문제해결을 진행하는 11개 장르의 서로 다른 예술인들이 벌리는 ‘무한도전’같은 이야기들. 


한 예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 ‘뽀로로’로 유명한 기업 아이코닉스에 파견된 예술인들은 기업의 규모 확장으로 설립초기 가족 같은 사내분위기가 점차 희석되어 감을 인식하고, 직원들의 개인적 취향, 고민을 공유하여 사내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업무외적 소통이 없던 직원들 간의 상호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를 통한 의사소통의 방식이 다양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외에도 1974년에 설립된 ‘인천탁주’에 파견된 예술인들은 막걸리 익어가는 소리를 채집해 QR코드로 막걸리 라벨을 붙이기도 하고, 공장 내 유휴공간에 ‘인천탁주역사관’을 조성해 시각적인 아카이빙을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역사와 예술적 영감이 더해져 제품 이미지와 인지도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성공의 핵심 역량은 직원과 기업문화, 가치에 대한 투자다”라고 말했다. 매장 하나 늘리고 인테리어 바꾸는 일보다 ‘기업문화’와 직원에 대한 투자야 말로 잠재된 가치발견임과 동시에 가치투자인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상상실현위원회’ 등을 꾸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배경은 바야흐로 우리 사회 속 가치 투자의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한다. 기업들의 가치에 대한 움직임은 예술가들의 작업활동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예술인들 역시 자신들의 예술활동 가치를 투자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니까. 예술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존의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벗어난 새로운 장르개념과 이것이 적용된 공공예술 활동이기에 예술생태계에 던지는 예술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작동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300개 기업에 1,000여 명의 예술가를 파견해 경영전략, 상품기획, 마케팅, 조직문화 개선 등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팽이를 돌리는 힘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이슈를 예술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구성원들의 공감을 통해 비로소 힘을 갖게 되는, 그래서 의미를 지니는 예술활동을 지향하는 것이 ‘예술인복지’의 개념이다. 2016년에 파견 예술인들이 써내려갈 예술가치 전도활동은 기업, 기관, 지역 등에서 어떤 이야기로 펼쳐질까. 이들의 창직(Job Creation)활동은 지면에 맞닿은 작은 축을 중심으로 고속회전을 준비 중이다. 중심을 잡기위해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예술인들의 삶은 현실 속에서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넘어서려면 멈추기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회전해야 한다. 상상력은 중심을 잡고 버티게 하는 원심력의 동력이다. 비록 작은 팽이의 회전일지 모르나, 한 명 한 명의 예술인들이 풀어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프로젝트로 연결되고 있다. 그렇게 이들의 예술활동은 일상이란 접점과 ‘관계 맺기’를 시도 중이다.



박계배(1957- ) 서울예대 연극과, 상명대 예술경영학 박사 수료. 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 (사)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 등 역임. 현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휴직),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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