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미술은 오래전부터 비즈니스였다.

표정훈

비즈니스가 아닌 일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미술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것도 제법 오래 전부터 그러했으니, 루벤스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잠재적 고객이나 관람객들을 상대로 고도의 심리적인 비즈니스 이벤트를 연출했다. 오브리 메넨의 『예술가와 돈, 그 열정과 탐욕』(열대림)에 따르면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비서에게 편지를 받아쓰게 하기도 하고, 소리 내어 책을 읽게 하기도 했다. 고객들에게 일종의 멀티플레이에 능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연출이자 일종의 쇼였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돈에 관한 한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고객들이 본래 의뢰한 그림보다 하나 정도 더 의뢰하도록 만들었고, 자신이 수집한 다른 화가의 그림까지 끼워 팔았다. 미술 마케팅의 원조라고나 할까. 그러나 비즈니스로서의 미술이 본격화된 것은 역시 20세기에 들어온 다음부터의 일이다. 화상 로젠버그 없는 피카소를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이클 C. 피츠제랄드의 『피카소 만들기』(다빈치)에 따르면 로젠버그는 피카소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 둘이 손을 잡으면 천하무적일 것입니다. 당신은 창작에만 몰두하고,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지요.’ 이 제안에 적극 응함으로써 피카소는 작가, 화상, 평론가, 수집가, 큐레이터, 언론 등이 작품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작가의 명성을 ‘주조하는’ 20세기 미술 산업 최대의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다. 미술 시장에서 부와 명성을 추구하고 누리는 화가의 이미지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미술 관련 제도와 기성 권위에 저항하거나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고독하게 추구하는 화가의 이미지는 이제 전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미술에는 후원자가 존재한다.

이렇듯 미술이란 완전히 독자적,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지당한 말이지만 모든 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조건 안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미술 창작 활동은 다양한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렌체의 유력 가문, 예컨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미술이 꽃필 수 있었을까? 로마 교황들이 아니었다면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유명한 작품을 오늘날의 우리가 감상할 수 있을까? 프랑스 퐁텐블로파 미술은 프랑수아 1세 덕분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페기 구겐하임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카시나 슈지는 『예술과 패트런』(눌와)에서 대작 종교화보다 소품 풍경화와 초상화가 유행했던 네덜란드에 거실을 미술품으로 꾸미려했던 부유한 시민 계급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귀족적 교양은 부족하지만 경제력은 넉넉했던 시민 계급은 화상과 비평가들을 필요로 했다. 이른바 근대 서구 시민 사회의 부르주아라는 기반이야말로 회화 예술 시장의 기반이었다. 화상과 비평가들이 예술가와 후원자, 즉 고객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며 급기야 미술품은 투자의 대상이 되었으니 기업가 록펠러, J. P. 모건이나 필립모리스, 체이스 맨해튼 은행 같은 대기업들도 큰 손으로 나섰다.  


보통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결코 그렇지 않다. 공공건축비의 일정 부분을 미술 작품에 할당하는 제도 때문에 사실상 모든 납세자들이 뜻하지 않게(?) 미술 후원자가 되어버린 게 요즘 세상이다. 미술을 후원하는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고객들, 주식을 소유한 소액 주주들도 간접적으로나마 후원자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 국가의 국민이라 함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미술 후원에 참여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미술에 관한 교양과 식견이 단지 극소수 미술 애호가들의 ‘한가한 취미’에 그쳐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표정훈(1969- )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 칼럼리스트로 활동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등에서 강의했다. 『탐서주의자의 책』, 『나의 천년』 등 5권의 저서와 『중국의 자유전통』, 『고대문명의 환경사』 등 1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