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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e realms of the unreal : The End is a beginning, 헨리 다거

1972년 미국 시카고주의 노인요양소. 한 노인이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름은 헨리 다거(Henry Darger). 가족은 커녕 친구 한 명 없던 병원청소부, 팔 십 평생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비루한 삶의 주인공 아니 엑스트라.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수용시설과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던 암울한 유년기가 만들어 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두터운 벽이 되어 기어이 세상과 그를 단절시킨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비로소 평생을 가로막은 그 벽이 무너진다. 헨리 다거의 작은 방에서 발견된 1만 5천장의 원고, 60년 동안 단 한 명의 독자도 없는 고독한 글과 기이한 그림은 온전한 하나의 세상, 결국 그는 세상의 벽 너머 자신의 세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자신의 세상을 ‘비현실의 왕국(the realms of the unreal)’이라 명명한다. 그의 왕국에서는 욕망을 실현하려는 제복의 성인남자와 자연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무성(無性)의 전투소녀대 간의 비장한 전쟁의 묵시록이 펼쳐진다. 끝없는 전투와 고문, 그리고 학살. 패색이 짙은 전장에 등장하여 전세를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소녀대 ‘비비안 걸스.’ 그는 이 기이하고 병적인 대서사시를 표현하기 위해 트랜스페이퍼에 옮겨 채색한 일러스트, 잡지와 전단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들의 꼴라쥬 등 표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처럼 그의 왕국은 욕망과 순수·권력과 평화·인간의 욕망과 신의 의지 등 단순한 이항 대립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남근을 가지거나 곤충의 몸을 지닌 소녀 등 비현실적 이미지로 발전하고, 급기야 페도필리아 혹은 새디즘적인 학살과 고문 등 기괴하고 병적인 이미지들로 점철된 괴작(怪作)이 된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 아니 그의 왕국에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는 분류표를 붙임으로써 무학(無學) 노인의 엽기 취향을 인심 좋게 ‘예술’로 인정해주지만, 동시에 그를 ‘방외인’으로 간주하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기득의 권력과 욕망과 예술이 지배하는 세상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헨리 다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벽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이미지의 계보학’이라 명명할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작가를 ‘아웃사이더’로 속단할 수도 없으며, 그 어떤 작품도 함부로 방외시 할 수 없으리라. 쓰나미처럼 매순간 우리를 덮치는 이미지의 범람, 전철을 기다리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그 순간조차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의 유혹, 이들이 우리의 욕망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심상들은 과연 ‘인사이더’만의 것일까.


정신과 의사이자 문화평론가 사이토 타마키(斎藤環)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戰鬪美少女の精神分析)>에서 순수한 소녀에 대한 욕망과 폭력, 동시에 구원을 바라는 현대인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헨리 다거의 ‘비현실의 왕국’에 존재하는 전투소녀대 ‘비비안 걸스’는 지구를 지키는 ‘세일러 문’이나 정의를 지키는 ‘파워 퍼프 걸’의 욕망이다. 이들의 전쟁은 언제나 마쵸적 세상의 욕망에 맞서는 순수한 폭력이다. 가학적 욕망의 실체를 고통스럽게 목도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절대선의 승리. 언제나 세상 ‘밖’에서 살아왔던 헨리 다거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세상 ‘안’의 것들을 이미지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비현실의 왕국’은 그 어떤 세상보다 ‘현실적’이며, 그의 죽음은 한 인간의 죽음이자, 동시에 한 예술가의 탄생이다.



박상우(1965- ) 고려대 경제학 석사. 게임평론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강의. 게임 비평 작업과 함께 디지털이 가져오는 문화의 발본적 변화에 관하여 연구중이며,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 『컴퓨터 게임의 일반문법』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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