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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희생자의 폭력극복 : 홍성담의 경우

채수일

홍성담은 민중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홍성담의 역사의식과 고난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참여 때문이었다. 1990년 2월 홍성담은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수사과정에서 홍성담은 20일 동안 물고문을 당했다. <물 속에서의 스무날>(1999) 연작과 <반가사유>(1999)는 이 시기에 그가 당한 물고문 경험을 10년이 지난 후에 형상화한 작품 시리즈이다. 자신이 겪은 물고문 경험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기까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은 물고문이 그의 몸과 영혼에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반가사유>(1999, 130 x 193cm)에는 물고문을 하는 두 명의 심문관과 고문당하는 홍성담 자신이 등장한다. 심문관 한 명은 책상 위에 앉아 고문당하는 사람의 머리를 뒤로 제쳐 붙잡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주전자에 담긴 물을 손과 발이 묶여 있는 고문당하는 사람의 얼굴에 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문의 도구들(주전자, 책상과 걸상, 손발을 묶은 끈 등)은 보이는데, 두 명의 심문관과 고문당하는 사람은 윤곽만 있을 뿐, 투명하고 잘 보이지 않으며 배경 속에 흡수되어 있다.  



고문은 고문당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고문하는 사람도 비인간화시킨다.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선과 형태로 구별되지만 고문하는 사람과 고문당하는 사람은 배경에 흡수되어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체제와 그들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체제의 적이므로 존재해서는 안된다. 고문하는 자는 체제 속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계급과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다. 고문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그들은 먹어야 한다. 책상 아래 놓인 두 개의 밥그릇과 반찬그릇들은 고문의 일상성, 고문하는 자도 인간임을 보여준다. 고문이 끝나면 그들은 자식 걱정,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는 평범한 인간이다. 우리가 길 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고문당하는 사람은 발가벗겨져 붉은 색 밧줄로 묶여 있다. 고문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고난을, 고문하는 자에게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체제 반대자는 모두 공산주의자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만 통용된 논리가 아니다. 반공주의는 고문을 정당화했다. 모든 반체제론자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거짓이 체제유지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를 정작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물’에 대한 그의 생각에 혼돈이 일어난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홍성담에게 물은 바다 속 숲을 물고기와 함께 자유롭게 헤엄치던 유년시절의 기억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물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한다. 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의 근원이다. 섬에서 자란 그에게 물은 경계를 의미한다. 바다 건너 저 편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꿈을 꾸게 했고, 바다 건너에는 보다 더 낳은 세계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일깨웠다. 물은 경계이자 다리였다. 섬과 육지, 생명과 죽음의 경계이자 다리였던 것이다.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치던 홍성담은 이제 채 50cm 깊이도 되지 않은 욕조에서 다른 물을 체험한다. 묶인 채 거꾸로 욕조 속으로 처박힐 때, 그는 익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꼈다고 한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물고문 자체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근원, 자유, 꿈을 의미했던 물이 고문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홍성담은 어떻게 이런 정신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홍성담은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한, 고향에 대한 기억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물의 현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로서의 물고문을 이길 수 있었다. 기억은 가해자를 회개에로 촉구하고, 피해자를 분열시키면서도 치유한다. 모든 기억이 치유적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파괴적 기억도 있다. 그러나 자기초월적 기억도 있다. 이 기억은 개인적 고난의 경험을 시대의 경험으로 볼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주는 집단적 기억이며, 억압의 기재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변혁적 기억이다. 나는 홍성담을 치유한 기억은 바로 자기초월적 기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에 대한 기억, 생명의 근원에 대한 긍정이 홍성담을 치유한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가해진 고문, 폭력, 강탈은 가해자에게 보복함으로써, 가해자를 제거함으로써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심는 행위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생명은 죽음보다 강하고, 역사보다 길고, 삶보다 크기 때문이다. 폭력은 보다 큰 폭력의 우월성이 아니라, 희생자의 도덕적 우월성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



채수일(1952- ) 한신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독일 함부르크대학 선교아카데미 연구실장, 한국신학연구소장, 대화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테오 순더마이어 교수의 『미술과 신학』을 편역했고, 『Christliche Kunst in Japan und Korea』를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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