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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루카스 크라나흐와 마르틴 루터

이정구

좌) 루카스 크라나흐, 마르틴 루터 초상화, 1523
우) 루카스 크라나흐, 마르틴 루터 초상화, 1539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는 시기적으로 쌍둥이이다. 가로지르는 알프스산맥을 경계로 위쪽 지역(독일과 프랑스 일부,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이, 그 아래 지역(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종교개혁가를 든다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칼뱅(Jean CALVIN, 1509-64)이다.

루터는 칼뱅보다 26살 위인데, 루터가 63세에 사망한 후 칼뱅은 루터보다 18년을 더 살다가 55세에 사망했다. 산을 깎아 허물어 도로를 내고 그 위에 아스팔트포장을 할 때 산을 허문 것은 루터였고 도로를 내고 포장을 한 것은 칼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는 종교개혁 운동은 순교를 각오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루터가 로마 교황을 향해 반박 논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의 슐로스교회(Schlosskirche) 정문에 붙인 것이 1517년 10월 31일이니 올해 10월이 종교개혁 502주년이다. 이때 루터는 예수가 살았던 햇수보다 한 살 더 많은 34세였고 그때 칼뱅은 8세 어린이였다.

비텐베르크의 유지이며 유명한 화가로서 루터의 초상을 그려 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는 루터보다 11세 위였으나 루터보다 18년을 더 살다가 81세에 사망했다. 종교개혁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성 화상 이미지들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교회 안에서 철거하거나 파괴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가 더 강하게 이미지를 파괴하고 이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신학적 주장을 하느냐에 따라 개혁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회 안에서의 시각적 이미지에 관한 논쟁은 이미 8세기 초, 레오 3세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칼뱅은 이미지 숭배를 강력하게 반대하면서도 철거한 적은 없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미지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관통하고 있었던 학자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에 루터는 다른 개혁가들과는 다르게 종교개혁운동의 홍보를 위해 크라나흐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여 활용하고 동시에 시각 예술을 교회 안에 일정 수용했던 예술 애호가였다.

크라나흐의 루터 에칭 초상화는 1520년에 제작한 것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1523년 종교개혁 초기 크라나흐가 51세에 그린 40세 루터의 초상화, 1539년 크라나흐가 67세에 그린 56세 루터의 초상화를 살짝 비교해 보려고 한다. 

1523년에 루터는 울름 지역에서 교회보다 술집에서 더 공감력이 있는 설교를 하였으며 이때 예배용 찬송가를 무려 24곡을 작곡하였다. 1524년 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루터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영주의 편에 서서 폭도들을 처단하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1523년 루터 초상화를 보면 검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승 복장에 짧은 머리, 왼손은 성경을 잡고 오른손은 살포시 가슴에 얹고 있는 모습이다. ‘말씀과 믿음’을 강조하는 듯하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짧게 깎은 수염과 손톱, 총기 있는 눈과 굳게 다문 입, 짧은 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종교개혁운동을 지속 추진하고 있는 시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루터의 ‘오직 성경’이 초상화에 담겨있다. 그리고 2년 후 결혼한다. 1524년 농민혁명이 일어나고 루터는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종교개혁운동에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후 1539년 루터는 목사들에게 이슬람과 가톨릭 교인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설교를 하라고 했던 해이다.

1539년 루터의 초상화는 초로의 자태에 얼굴에도 살이 붙어 추진력보다는 원숙한 학자로서, 자신이 목적했던 바를 이루어 낸 기득권자의 모습이다.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있지 않은 대신 성경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세월이 갈수록 믿음보다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크라나흐는 긴 세월 루터와의 우정과 신앙적 동지로 시기마다 변화하는 루터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요즘 돈이 많아 말썽이 많은 대형개신교회들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돌이켜 볼 일이다.


- 이정구(1954- ) 영국 버밍엄대 교회사 전공 박사 졸업.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역임. 『Architectural Theology in Korea』(2011), 『교회건축의 이해』(2012), 『성상과 우상』(2012)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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