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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자연은 언제나 옳다

함혜리

이런저런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은 일. 마음이 복잡할 때면 찾아보는 그림이 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이다. 자욱한 안개가 바다처럼 깔려 있다. 앞으로 바위산, 그리고 바위 위에 올라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거친 운명 앞에 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가벼운 붓 터치를 이용한 사실적 표현, 현실 초월적인 주제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프리드리히는 동북부 발트해 근처 항구도시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다. 드레스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그림 속에 많이 담았다. 프리드리히는 걷기를 좋아해서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을 깨우친 듯하다. 뤼겐, 보헤미아, 하르츠 산맥 등 독일 전역을 여행했으며 발트해 연안에 머물기도 했다. 1815년과 1818년 다시 발트해 여행을 했는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발트해 여행에서 돌아와 그린 작품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 함부르크미술관


등을 보이고 있는 그림 속의 인물은 마치 관망자인 듯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자연의 숭고함과 위대함, 이를 대하는 인간의 경외심이 표현된 작품이다. 그의 풍경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관계에 대한 내적 통찰을 보여준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자연은 변치 않는 이상과 영원성을 대변한다. 항상 변화를 겪고 번뇌하는 사람들이 성찰과 명상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을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비평가 제르네르는 이 그림 속 요소들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안개는 방황과 감추어진 현실, 하늘과 대지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며 하늘과 대지를 이어주는 암벽들은 신앙에 대한 상징이라고 한다.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는 불운했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프리드리히는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고독과 우수에 젖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 화가였다. 이런 성향은 그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파 교도였던 아버지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머니 사이의 열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런데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다. 심지어 그가 보는 앞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동생이 얼음에 빠져 죽는 일도 겪었다. 1781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연이은 비극을 마음에 담고 1794년 코펜하겐의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한 그는 1798년부터 낭만주의 주요거점이던 드레스덴에 정착해 살았다. 하지만 비극적인 가족사의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걸으면서 많은 상상을 했고, 그리운 고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는 불우한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런 그의 그림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죽을 것 같은 고뇌를 통해서 탄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리라.

프리드리히는 새로운 세계가 오기를 갈망했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사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독일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였다는 것은 참 알수 없는 운명이다. 예술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탄압했던 나치는 프리드리히를 민족 정체성을 드높이는 ‘독일적인 미술가’로 호명했다. 히틀러가 낭만주의 회화를 좋아했던 게 결정적 이유였다. 현대 독일인들은 탈 나치화 과정을 거치면서 나치가 선정한 프리드리히 같은 화이트리스트 작가들을 외면했다. 프리드리히에 대한 재조명은 독일 밖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사무엘 베케트는 프리드리히의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에서 영감을 얻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구상했고 1972년 런던의 테이트갤러리는 프리드리히 개인전을 열어 그의 낭만주의 예술을 재조명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를 다시 보자. 인물을 등지게 한 것은 그리움을 강하게 표현한다. 주인공은 안개와 구름을 바라보며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리워한다. 자신이 그려낸 세계를 바라보는 프리드리히를 상상해 본다.


함혜리(1960-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역임.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엠앤케이), 『아틀리에, 풍경』(2014, 서해문집), 『미술관의 탄생』(2015, 컬처그라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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