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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폭풍 속의 예술혼:윌리엄 터너

권지예

소설을 쓰는 나는 그림을 보며 가끔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림에 나타난 대상과의 거리 감각을 통해서 객관적 묘사를 배우기도 하고, 의외로 상상력이 자극되어 서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에게나 화가에게 체험이란 얼마나 중요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들은 생생한 글을 위해서 기꺼이 힘든 체험을 감수하는일이 있다. 그런데 화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작업하는게 아닐까. 왜냐하면 고전적인 그림들을 보면 화가의 눈은 거의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영국 화가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그림을 보면, 그는 시야가 아주 넓은 눈을 가진 화가이며 그의 그림은 스케일이 크다. 거대한 하늘의 구름이나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이나 대성당같은 웅대함에 압도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그림 중에 내 생각을 바꿔 놓은 것이 있다. <폭풍(Snow Storm)>(1842)이란 그림이다. 눈보라치는 밤바다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고 희미한 한 척의 증기선. 어둠 속 밤바다의 파도와 밤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처럼 증기선을 위협하는 듯한 그 그림을 보면 마치 내가 그 눈보라의 폭풍우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며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절박하고 절실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화가의 치열한 작가 혼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너는 어느 날 폭풍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몸소 폭풍을 체험하고 싶었다.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그는 바다로 나가 어부에게 부탁했다.


“갑판 돛대에 제발 나를 묶어 주시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절대로 나를 풀어 주지 마시오.”


밤새도록 그는 돛대에 매달려 사나운 짐승처럼 포효하는 폭풍에게 자기 자신의 몸을 내주며 처절하게 고통을 감수해냈다고 한다. 몸으로 느낀 그 고통을 화폭에 옮긴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 그의 온몸에 밤새도록 각인된 고통과 대자연의 위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위대한 그림이다. 그림에 스민 화가의 무서운 화혼(畵魂)과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설의 바다에 홀로 뛰어들어 고군분투할 때, 나는 터너의 목소리와 이 그림을 떠올린다. 작가로서 나태해질 때, 이 그림은 나를 일깨운다. 예술가라면 험한 세상의 돛대처럼 폭풍에 온몸을 내던져야 하지 않을까...? 이 그림 앞에서는 여러모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권지예(1960- ) 프랑스 파리 제7대학 문학 박사. 1997년 문예지 『라쁠륨』으로 등단. 이상문학상(2002), 동인문학상(200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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