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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가 밀레와 무용가 조택원

성기숙

내 마음 속 미술(112)
성기숙 / 무용평론가

화가 밀레와 무용가 조택원


“그곳은 고궁(古宮)으로 유명한 퐁텐블로 근처였다. 파리에서 고속도로로 2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그림 <만종>에서와 똑같은 교회가 그때도 똑같은 모양으로 서 있었고, 주위는 그 옛날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답지 않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림에서와 같은 기도하는 두 농부만 없을 뿐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그 두 농부가 섰을 법한 그 자리에 서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러지며 정말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경건한 마음이 우러나오면서 나는 한층 더 큰 희망과 용기를 깨달았다.”

신무용가 조택원의 자서전 『가사호접』(1973)의 한 구절이다. 조택원은 1937년 파리 외곽에 위치한 <만종>의 작가 밀레가 머물렀던 퐁텐블로를 방문하고 그때의 감흥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19세기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밀레의 명화 <만종>은 우리에게도 퍽 낯익다. 그림 <만종>엔 황혼에 붉게 물든 석양을 배경으로 두 젊은 농촌 부부가 저녁기도 종소리를 듣고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형상화되어 있다.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화폭에 그려진 경건하고 숭고한 삶의 여정은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휘문고보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법과를 나온 조택원은 1937년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그는 이미 1927년 일본에 유학,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서양 모던댄스를 체득한 터였다. 서양 본토에서 직접 모던댄스의 진수를 배우고자 한 열망이 그를 유럽으로 이끌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소일하거나 음악회 관람 또는 박물관 순례로 일상을 보낸다. 박물관 마니아였던 그의 지적 호기심은 바르비종파의 성소 퐁텐블로로 인도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1857-1859, 유화, 66×55.5cm, 소장 오르세미술관. 제공 위키미디어

조택원의 무용작품 <만종>은 밀레의 그림 <만종>이 탄생한 퐁텐블로 방문에서 얻은 영감을 한국적 감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서양의 바르비종파 명화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자연과 대지를 벗 삼아 노동에 열중하는 농촌 부부의 진솔한 삶을 목가적 풍경으로 담아냈다. 초연 당시 <만종>은 쇼팽의 <야상곡>을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음악을 사용하여 관심을 모았다.

무용작품 <만종>의 남녀 2인무 형식도 이채롭다. <만종>의 공연 때마다 조택원이 누구와 호흡을 맞출 것인지가 늘 화젯거리 였다. 초연 때 조택원은 스승 이시이 바쿠의 여동생 이시이 에이코와 호흡을 맞췄다. 제2회 공연에서는 발레무용가 진수방이 파트너였고, 1937년 도쿄공연에서는 박외선과 2인무로 선보였다. 박외선은 이화여대 무용과 창설을 주도한 인물로 한국의 무용발전에 기여한 춤의 선구자이다.

박외선 이후에도 <만종>의 파트너는 계속 바뀐다. 1930년대 말 스승 최승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택원의 <만종>에 출연한 김민자는 이 일이 화근이 되어 결국 스승과 결별한다. 해방직후 조택원은 제자 이석예의 월북으로 예정했던 공연을 취소하게 되는데, 경쟁자 최승희가 이석예의 월북을 부추겼다고 분개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만종>의 파트너를 두고 당대 최고의 무용스타 조택원과 최승희 사이에 복수혈전이 벌어진 셈이다.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념대립과 사회적 혼란, 그리고 친일무용비판 등 활동 여건이 여의치 않자 조택원은 한국문화를 선전할 목적으로 무용단을 조직하여 도미(渡美)한다. 미국에서는 조택원의 아내가 된 영화배우 김선영이 <만종>의 파트너로 활동했으나 두 사람은 몇 년 후 결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1950년대 이후 조택원과 호흡을 맞춘 <만종>의 여성 출연자는 국적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예컨대 1950년 하와이공연에서는 헐리우드 무용스타 엘로이즈 올소와 < 만종>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또 1950년대 중반 유럽공연에서는 조택원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오자와 준코가 파트너로 나섰다. <만종>의 최다 출연자는 역시 오자와 준코로 기록된다.

휘문고보 1년 선배인 시인 정지용은 조택원의 <만종>에 대해 “원근법의 구도와 종교적 생활감정의 표현이 거장의 원화(原畵)에 조선의 바지와 치마를 입혀 독특한 무대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했다. 조택원의 사후(死後)에도 <만종>은 대표적 신무용 레퍼토리로 자주 무대에 오른다. 그림 <만종>에 내재한 장 프랑수아 밀레의 예술혼이 시공을 초월하여 조택원의 무용작품<만종>을 통해 ‘오늘 여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 성기숙(1966- )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 연낙재 관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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