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캐는 이전에도 지금도 얼리어답터다. 어린 시절의 나는 기계조립부터 뒤집고 엎고 스케치하고 만들기를 좋아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유난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미술대회에 나가면 곧잘 상을 받았는데 이 때문인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미술 교육을 거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미대 재학하기 전부터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선망하였다. 그의 특정한 작품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탐구적인 그의 정신세계와 섹시한 뇌를 좋아한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데, 스티브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예술과 공학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융합한 천재”라고 평했다.
좌)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인의 초상>, 종이에 붉은 분필, 1512, 33.3×21.6cm, 이탈리아토리노왕립도서관 소장 우) 레오나르도 다빈치,『코덱스 포스터』 3권,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 V&A박물관 소장 ©V&A박물관
그는 공학자이며 과학자이고, 기술자이며 화가이다. 다빈치를 화가로 떠올린다면 지나치게 그의 일부만을 기억하는 것이 될 거다. 다빈치는 관찰과 사색, 독서와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고 가히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구했다 할 만큼 호기심이 가득했다. 생전 수천 페이지의 스케치를 남길 정도로 말이다. 최초의 비행장치 설계도도 다빈치의 스케치에서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모든 만물의 작동원리를 알고자 했던 그의 스케치북은 백과사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시대에? 그 생각을?”
놀랍지 않은가. 대중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의 작품도 미술로 들어가 보면 스푸마토 기법 등 인간에 대한 해부학적 이해와 빛의 효과가 빚어내는 회화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다빈치는 21세기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손색없는 천재적 인물이다.
그의 탐구 정신과 메모를 떠올리며 나 또한 패드에 하루에 수십장씩 드로잉을 하며 나 자신을 준비한다. 2010년 바(bar)를 운영할 때였다. 그 벽면에 여러 재료를 가지고 내가 작업한 것을 우연히 한 평론가와 아트디렉터가 보고는 방향성을 제안해주었다. 거기에서 힘을 얻어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어느 날인지 택배를 포장하는데 “찍찍” 사용하는 테이프로 겹겹이 붙여지는 컬러에 느낌이 확 와닿았다. 그간 해오던 음악의 리듬, 리드미컬한 표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지금도 테이프를 재료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시간도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나의 맞춤형 옷이 되려면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 ‘우행’(3.30-6.19, 시그니처키친스위트 청담쇼룸 아틀리에)이라는 전시를 시발점으로, 그림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정확하게 간파하지는 않았지만 느낌을 알아가고 있다. 다빈치와 같이 그 생각법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가 되고 싶다. 지금은 그를 오마주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여질 때까지 달려보고 싶다.
- 구준엽(1969- ) 경남대 산업디자인과 학사. 1990 ‘현진영과 와와’ 데뷔, 1996 그룹 클론 활동 시작. 1996 서울가요대상, 2001 Mnet 공로상 등 수상. 김건모·룰라·DJ DOC 등 앨범 재킷 디자인, 2011 이후 다수 전시 및 아트프로젝트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