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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베르메르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나날들...

조윤선

연수차 뉴욕에 머물던 일년 반 동안, 나는 프릭컬렉션을 서른 번도 더 찾았다. 카네기와 동업자였던 프릭이 5번가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꾸며 평생 모은 작품을 전시하는 ‘참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어느 날 왼편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걸려있는 그의 그림을 보았다. 베르메르의 <장교와 소녀>.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그가 살던 시대의 바로크 음악을 배경으로, 큐레이터가 유럽식 억양으로 이렇게 설명했다. ‘왼편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부드러운 색조의 벽을 애무하고...’ 정말 그 그림속의 햇빛은 회칠한 부엌 벽을 애무하고 있었다.



런던에 가니 뉴욕을 떠나올 때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던 ‘베르메르와 델프트 화파’라는 대형 전시가 투어를 와 있었다. 마흔 점도 안 남아 있는 그의 그림을 전 세계에서 다 모아 온 것 같았다. 비엔나에서 보지 못했던 그림도 와 있었다. 다른 델프트화파들의 그림도 함께 있었다. 그의 그림을 한번 놓고 보니, 한 작품인가를 제외하곤 모두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왼편에 있다는 사실도 재밌었다. 델프트화파 모두 같은 화풍인데 왜 베르메르만 유명한지도 그 전시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답은 ‘구도’였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이 그냥 보이는 대로 찍은 사진 같았다면 베르메르의 그림은 최대한 클로즈업을 한 사진 같았다. 인물의 몸짓과 표정이 화면에 꽉 차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순간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하는 마법을 지녔다. 그는 2차원의 화면만 클로즈업을 한 게 아니라 4차원의 시간까지도 클로즈업했던 것이다.


보스톤에 가서도 그의 그림을 찾았다.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미술관에 가니, 그의 그림 <음악회>는 1990년에 렘브란트 그림과 함께 도난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미술관 측은 액자가 있던 자리가 빛이 바랜 벽을 그대로 놔두었다. 그 미술관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림을 갖고 계신 분은 보존을 위해 꼭 화씨 70도, 습도 50%를 지켜주세요.’라고. 워싱턴 법원에서 일하는 넉 달 동안 시간만 나면 내셔널갤러리를 찾았다. 내셔널갤러리에도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과 같은 수작이 세 점이나 있었다. 어느 날 미술관 안에서 베르메르와 델프트 화파에 대한 영상물을 틀어주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덴마크 억양이 섞인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메릴 스트립의 해설은 화가의 고향, 북유럽의 분위기를 진하게 자아냈다.



베르메르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빛’이었다. <진주 귀걸이 소녀>의 귀걸이에 떨어진 가는 빛 한줄기를 보고 메릴 스트립은 ‘한 방울의 수정을 떨어뜨려 마무리했다.’고 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남유럽에 쏟아지는 주체할 수 없는 햇빛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베르메르는 스산하고 침울한 북구의 차가운 햇빛을 화폭에 담았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정확한 형체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맨눈으로 찾기 힘들었던 북구의 빛을 찾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았을까...



조윤선(1966- ) 서울대 외교학 학사.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법학 석사. 사법시험 33회 합격. 김앤장 변호사, 한국시티은행부해장겸 법무본부장 역임. 저서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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