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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나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유상옥

살면서 취미가 있는 삶은 즐겁다. 그것이 수집하는 취미일 경우, 모을 때 즐겁고 모아놓고 감상하는 기쁨 역시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남다르다. 내가 미술품 수집을 내 삶의 취미로 삼기 시작한 것은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70년대 초 중반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림보기에 빠져들어 틈만 나면 인사동 화랑가에 드나들곤 했다. 그때 만난 작품이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의 산수화였다. 당시 제약회사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연말 보너스를 봉투째 내주고 그 그림을 구입하였다. 그것이 나의 첫 수집품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던 향수를 느끼고 뒷동산에서 진달래 꺾던 추억을 되살리곤 한다. 소정의 산수화는 나의 감성을 기르고자 그림 감상을 하던 시절 어렵게 산 첫 작품이어서 더 정이 간다.


70년대 후반 들어 직장이 제약회사에서 화장품회사로 바뀌면서 청자유병·백자 분항아리·고려 동경·비녀·비치개·노리개 등 전통화장도구나 여성용품으로 수집방향을 바꾸었다. 청자상감모자합(靑磁象嵌母子盒)도 그 당시 수집한 고미술품이다. 큰 합 속에 작은 합이 여러 개 들어있어 분·연지·눈썹먹 등을 담을 수 있는 이 그릇에는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고려시대 여인들의 바람처럼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들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한국 여인들의 미를 향한 소망이 담긴 전통화장도구 수집은 지금까지 나의 주된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모은 5,500점의 유물들은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설립의 근거가 되었다.



CEO의 문화시설투자는 사회적 공헌

80년대 해외 출장길에 유명 화장품 회사가 운영하는 미술관들을 관람하면서 나는 다시 그림 수집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회사도 전문 미술관·박물관을 만들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 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1988년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하게 되면서 나는 미인도 수집에 몰두하였다. 파리의 스위스 빌리지(Swiss Village) 화랑가에서 조우한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의 여인 이미지와, 루브르박물관 옆 루브르 앤틱 상가에서 우연히 만나 소장하게 된 샤를 고티에(Charles Gautier 1831-91)의 대리석 조각 <아침(Le Matin)>은 지금까지 내 마음속의 여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랜 기간 수집한 수많은 미인도 중 나는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선생의 <춘향도>에 유독 애정이 간다. 녹의홍상(綠衣紅裳)에 잘 빗어 내린 검은 머리와 단정한 가르마, 맑은 눈과 고운 피부가 한국 미녀의 품위를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키가 크고 학같이 고우신 인자한 모습의 이당 선생과 화랑에서 담소를 나누던 시절이 떠오른다.



40년간을 마치 밥을 먹듯 미술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다 보니 어느덧 미술품과 유물이 6,500여 점에 이르게 되었다. 수천 점의 미술품들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를 나 혼자서만 소유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해서 평생 모은 미술품과 문화재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페이스씨를 2003년 신사동에 설립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리아나미술관·화장 박물관에서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의 큰 행복이다.


건물에 물건만 쌓아놓으면 창고가 되고, 살림살이가 있으면 집이 되고 문화적인 물품이 있으면 문화적 공간이 된다. 문화가 있는 공간이 참삶의 보금자리이다. CEO가 문화재를 수집하고 기업이 박물관,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에 투자하여 문화적 참삶의 보금자리를 점차 늘려가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적 공헌이라 믿는다. 미술품과 문화재를 모아 전시하고 연구하고 계승한다는 소명의식이 우리나라에 넘쳐나길 바란다.



유상옥(1933- ) 미국 유니온대학 경영학 박사. 현 코리아나화장품 대표, 스페이스씨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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