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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결핍과 절박함 속에서 나아간 예술을 들여다보다

김태훈

과연, 예술가에게 ‘결핍’이란 자기 예술의 유일한 원천인가? 결국, ‘절박함’에서 오는 예술적인 지향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독선’과 ‘아집’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인가? 이것은 연극 <레드(RED)>를 통해 추상표현주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70)를 알아가면서 내가 가지게 된 질문이다.



연극 <레드> 포스터. 2022.12.20-2023.2.19,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극 속 배경은 1950년대 후반, 로스코가 시그램 빌딩의 레스토랑에 걸릴 그림을 의뢰 받으면서 시작한다. 당시 로스코는 미국 미술계 안에서 돈과 명성을 쌓아가던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한 동료로부터 변절자라는 낙인을 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온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로 어린 시절을 보낸 로스코에게 미술은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미술에 입문한 로스코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 특히 니체의 사상에 빠져들었고 1·2차 대전과 대공황 시기를 겪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인간의 ‘비극’에 대한 일종의 경고를 주고 싶어한다. ‘비극’은 로스코가 평생을 통해 말하고자 한 주제이다. 로스코는 ‘비극’을 가장 잘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표현이 필요했고 앙리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1911)로부터 색면에 대한 영감을 얻어 지금 우리가 아는 로스코의 작업이 완성된다. 극 중에서 로스코는 자신의 미술에 예술적·철학적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경지에 이른 화가지만, 자기 자신만이 유일하고 자신 외에는 과거와 미래의 어떤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고집쟁이로 표현된다. 극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중후반은 미술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사조와 흐름이 나타나는데 로스코는 그런 새로운 흐름에 대해 경악할 정도의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새로운 어린 조수 ‘켄’과의 대화를 통해서 연극 전반에 묘사된다.

극을 준비하며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가 ‘결핍’이었다. 로스코에게는 어떤 결핍이 존재했을까? 아무도 환대하지 않는 러시아 이민자, 유대인으로 받은 차별, 어린 시절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 가난 …그러한 ‘결핍’이 로스코로 하여금 ‘비극’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비극’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미술이나 공연은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기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그림을 봐 주기를 원한 로스코는 ‘절박’했다. 미국이라는 거대자본주의국가에 살면서 아나키스트를 자칭하는 예술가 동료와 함께 자본주의에 종속되어가는 예술을 비판했지만, 사람들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내기 위해 끊임없는 절박함 속에 그림을 그렸다.

이혼 후, 두 번째 아내를 만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에는 밝고 선명한 색이 가득 찼고 작가 로스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색(color)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완벽한 균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로스코의 ‘결핍’이 채워지자 화가로서의 삶도 점점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극 <레드>에 이런 대사가 있다. “예술가는 다 배고파야 돼. 나만 빼고!…” 참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솔직한 우리의 심정이기도 하다. 로스코는 더욱 자기확신으로 똘똘 뭉쳐갔다. 세대를 초월한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절박함’으로 <시그램 벽화> 의뢰를 수락하지만, 그 이후 그의 작품은 ‘레드(Red)’를 잃어버린 듯 점점 어둡고 깊은 회색과 검은색으로 점철되어간다.

미술이나 공연 같은 예술이 만들어지기까지 창작 과정의‘결핍’과 ‘절박함’은 큰 동기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흐름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인정이 없이 만들어진 창작물이 어떻게 받아 들여지게 될지는 연출가로서의 나에게도 계속 모색해 나가야 할 과제로 함께 할 것이다.


- 김태훈(1974- )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도둑배우>, <딸에게 보내는 편지>, 뮤지컬 <시카고>, <원스>, <빌리 엘리어트>, <이토록 보통의>,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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