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로댕의 조각상 <깔레의 시민>을 생각하다

김후란

시간이 허락하면 화랑가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좋은 미술품을 대하는 즐거움은 음악을 듣는 시간처럼 정신을 맑게 해주고 감동의 물살은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간직된다. 해외여행길에 시간을 쪼개어 미술관·박물관·문학관 등을 찾아가서 평소 책속에서나 만났던 작품들을 대하는 감격은 귀중한 경험이다. 많은 명작을 대했지만 로댕미술관에서 본 조각작품들은 나를 압도하였다. 대리석 작품 <디나이드>의 부드러운 흐름은 차가운 대리석이 마치 피가 통하는 촉촉한 살결처럼 느껴졌다. <디나이드>는 밑 빠진 물통에 계속 물을 길어 부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여인이 끝내 기진하여 쓰러진 모습을 작품화하고 있다. 남녀의 영원한 사랑의 격정을 포옹으로 표현한 대리석작품 <입맞춤> 역시 그 대리석의 차고도 정밀한 재질을 최고의 손길로 다듬어낸 로댕의 명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일부 공직자들의 온갖 비리사태를 보면서 발없는 말로 백 마디 천 마디를 웅변하는 로댕의 작품 <깔레의 시민>이 떠오른다. 로댕은 <깔레의 시민>을 10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그만큼 비중을 둔 역작이면서 로댕의 끈기와 창작정신이 그 작품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연과 맞물려 내 발길을 잡고 놓지 않았었다. 프랑스 노르망디해안을 따라 돌아가면 ‘깔레’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고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전쟁 때 깔레 시민들은 끝까지 영국군에 저항했으나, 결국 구원부대가 도착하지 않아 항복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그 끈질긴 저항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시민 6명을 뽑아 목에 밧줄을 매서 영국군 진영으로 끌어다가 처형 할 것을 명했다. 그때 깔레 제일가는 부자인 장데르가 끌려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상인 위쌍이 나서고 그 아들이 나서고..... 이런 시민들의 용감한 자기희생을 보면서 감동한 왕비의 호소로 왕은 그 6명의 시민을 전부 살려주었다는 실화가 전해지고 있다. 밧줄로 엮어져 끌려가는 6명의 형상을, 그 희생정신을 장중한 대작으로 보여준 로댕의 의지에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새롭다.


원래 깔레 시에서의 의도는 영웅적인 시민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을 원했으나, 로댕은 죽음도 불사한 결연한 여섯명이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심리적인 갈등과 침통한 표정을 강조하여 더욱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들이 모든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의 길로 나선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의 비장미(悲壯美)가 초월적인 빛을 내뿜고 있다. 이 작품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차라리 역발상의 <깔레의 시민>으로 잘못된 시민상을 과감히 고발하는 일이 아닌가싶다. 로댕의 작품세계가 문학적인 성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로댕은 어릴적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우할 때 자신의 지식이 너무 빈약한걸 느끼고 시와 고전문학을 탐독하게 되었다한다.


로댕의 필생의 역작인 <지옥의 문>은 파리에 장식미술관을 세울 때 미술관의 문 제작의뢰를 받고 생애를 걸어 제작되었다. 1880년부터 사망하기까지의 37년 동안(1900년에 1차완성) 매달린 이 대작의 구상은 평소 애독했던 단테의 『신곡(神曲)』 지옥편과 정죄편, 천당편이 망라되었다. 웅대한 문 상단 중앙에 시인(詩人)이 깊은 명상에 잠겨 불의 바다앞에 앉아있고 이 시인이 독립된 상으로 저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이라 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 로댕은 문학과 미술의 운명적인 결합의 극점으로 시대를 영원히 살고 있는 것이다.



- 김후란(1943- ) 현대문학상(1968), 대한민국문학상(1994) 등 수상. 한국일보사 문화부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현 문학의집 서울 이사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