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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심영섭

빛이 새어 들어오는 네덜란드의 어두침침한 부엌. 여자들이 주인인 이곳에서 한 소녀가 양파와 당근 같은 야채를 자르고 있다. 익숙한 손 놀림마다 절단되어 탄생되는 야채의 단면은 화면 가득 고운 색감을 흘리고, 소녀는 이것들을 한 접시에 나란히 담는다. 이윽고 야채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황금 비율의 배열과 모양으로 옷을 벗는다. 영화는 일상의 예술인 야채 썰기를 통해, 위대한 문호가 되었을 문맹자나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을 귀머거리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었을 한 하녀에 대한 이야기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사실 피터 웨버 감독의 데뷔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아니었다면, 내게 베르메르란 이름은 네덜란드란 먼 이국의 먼지 쌓인 플랑드르 그림들의 창조주, 정물과 풍경의 화가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자면 공기와 숨소리마저도 시간의 압침으로 꾹 눌러 채집한 것 같은 한 순간, 그 정밀함에 숨이 막혀 온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 중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베르메르 특유의 정밀함을 넘어서서 바스라지게 아름답다. 영화에서는 베르메르의 하녀를 상정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빠져 죽어도 좋을 것 같은 영롱한 눈과 반짝이는 빛으로 윤기 도는 붉은 입술. 청색과 금색의 강렬한 색감으로 대비된 두건. 사실 이 소녀의 터번은 네덜란드 문화란 관점에서 보면 기괴하기까지 하다. 네덜란드 소녀 누구도 이런 터번을 쓴 것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진주 빛 영롱한 외짝 귀걸이는 그림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부여 잡고 고요히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로 상류층이란 계급적 감옥에 갇혀 눈이 몽롱해진 귀부인이나 강건한 노동의 순간을 포착해 냈던 베르메르의 여러 그림 중, 이 그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항상 베르메르의 캔버스 안에 존재 했던 창문과 그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이 사라졌다. 게다가 늘 피사체에 조심스럽게 떨어져서 관조 자세를 견지했던 화가의 눈이 갑자기 모델에게 바싹 다가가 있다. 특히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서 유일하게 이 소녀 모델은 화가를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속 소녀와 화가의 관계는 진정 어떤 것이었을까?’


원작자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한 장의 그림에 하녀와 화가의 숨겨진 사랑으로 상상력의 입김을 불어 넣었다. 반면 영화는 이러한 은밀한 상상력에 빛을 붓 삼는 인상적인 촬영술로 복원하려 든다. 그러나 그 모델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것. 그녀의 눈 속에 그의 눈을 담아 내는 것이며, 그의 눈길 속에 나의 마음 길을 여는 것. 영화에서 소녀의 귓불을 찢고, 화가가 진주 귀걸이의 침을 밀어 넣는 장면은 그 어떤 순결한 소녀의 몸을 탐하는 에로틱한 장면보다 더 저릿하게 관능적이다. 이 순간 피터 웨버 감독은 한 장의 회화에서 ‘여성의 몸속에 녹아든 정지된 에로티시즘’을 부드러운 떨림으로 구체화 한다. 이로써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치밀한 네덜란드 시계 같은 베르메르의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아한 방법으로 멋지게 탈출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어두운 날. 두 눈에 조명기구를 단 듯한 환한 그녀. 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걸이를 한 그녀’를 자꾸 쳐다 보게 될 수 밖에.



심영섭(1966- ) 고려대 심리학과 박사. 씨네21 영화평론가 우수상(1998)을 수상 후 현재까지 평론가로 활동 중. 한국영상응용연구소에 소장으로 재직하며 영화/사진치료 보급에 힘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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